남탓도 못할 시대

등록일 : 2007-07-30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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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7. 29(일)  - 기호일보 기고문 -


한국인들이 즐겨 쓰는 말 중에 “잘되면 내 탓, 잘못되면 남 탓”이라는 말이 있다. 자기책임보다는 다른 사람 또는 환경적 제약을 실패의 요인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 부분에는 나 자신도 상당히 수긍이 가는 바가 없지 않다. 나 스스로도 어떤 일에 실패했을 때 자신보다는 남의 잘못을 먼저 찾기 때문이다. 인지상정이라고 할까 아니면 관성이라고 할까? 어쨌든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 탓보다는 남 탓을 하는 시대다. 그러나 일상적인 생활에서 남 탓은 문제가 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꼭 남 탓을 해야 하는 곳이 있다. 바로 정치라는 영역이 그것이다.


 정치란 기본적으로 사람들에게 책임을 져야하는 행위다. 민주주의의 국가의 주권(主權)은 국민에게 있으며, 정치의 영역은 이와 같은 주권을 잠시 위임 받아 국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다양한 노력과 행위가 일어나는 장(場)이다. 그러므로 정치가는 자신들의 행위에 대한 책임이 정치의 원칙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한국의 국민들에게 정치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이유도 바로 이 같은 기초적인 원칙이 지켜지지 않기 때문이다. 작금의 현실을 보면 무책임 정치가 판을 치고 있다. 어제 한 말을 오늘 바꾸고, 정책실패와 생활 영역의 위기를 남 탓으로만 돌리는 세태에 과연 누가 정치를 신뢰할 수 있단 말인가!

 한국 정치사에는 책임이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다. 대통령이 바뀌면 정당을 새로 만들고, 또 선거가 다가오면 다시 헤쳐모이기에 급급한 정치적 현실에게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가? 대의민주제에서 국민들이 정치적으로 유일하게 행사할 수 있는 권리는 선거다. 그러나 정치적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할 선거에서 책임을 져야할 대상이 사라져 버린다면 국민들은 누구를 심판한다는 말인가! 내가 경기도의회라는 작은 규모의 정치영역에서 배울 수 있었던 책임의 무게가 ‘큰 판’에서는 통하지 않는 논리인 것 같아 개탄스럽다.


 정치의 특성상 국민들은 꼭 남 탓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들이 선택한 정치인들에게 다음 선거를 통해 그 행위의 결과를 심판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들에게 남 탓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자. 경제적 어려움, 정치적 혼란 그리고 하다 못해 일상의 짜증까지 갖가지 묵은 스트레스를 풀어낼 수 있도록 그 대상을 만들어 주자. 그러나 “정치가 잘못되니 이 모양이지”라는 말이 모든 정치인들에게 화살로 꽂히지 않게 신뢰와 불신의 대상을 구분하게 해주어야 한다. 정당은 책임정치의 근간이며 선거라는 국민적 선택에 의해 그 존립이 결정되어야 한다. 자신들의 실패를 간판 바꾸기와 인적자원 물타기로 희석시키는 행위는 책임 없는 정치적 꼼수다. 한국 정치에서 백년을 지속할 정당을 만들기 위해서는 비판과 칭찬을 모두 감내할 수 있는 기다림의 진중함이 갖추어져야 한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는 것이다. 한국의 대다수의 정치인들에게 어찌 처음에는 책임이란 원칙이 없었겠는가? 다만 자신을 뒤돌아보는 계속적인 성찰의 시간과 자성의 노력이 없었기에 초심에서 멀어져버렸을 뿐이다. 이제는 원점으로 돌아갈 때다. 자신들의 행위와 업적에 대한 겸허한 비판을 내 탓으로 돌리고 국민들이 책임의 대상을 명확하게 탓할 수 있도록 자기의 위치를 꿋꿋하게 지켜가야 한다. 정치적 비판의 대상이 사라지는 것은 반대로 정치적 칭찬의 대상으로서의 지위도 함께 상실하게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본인은 경기도의원으로 재직하면서 정치인의 책임이라는 것에 대해 틈틈이 생각하곤 한다. 회의장에서 내가 한 번 거수할 때마다 경기도민에게는 새로운 제도가 생기게 되고 그 제도는 주민의 삶의 영역을 참견하고 제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례 하나를 만들더라도 허술하게 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물며 지방의회도 이와 같은데 국회의 법률제정행위야 재삼 거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또한 현재 대선정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책임의 상실과 빈 공약의 남발은 참으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들에게는 ‘남 탓’이, 정치인들에게는 ‘자신 탓’이 필요한 시대다. 정치적 이합집산을 멈추고 책임정치로 돌아가자. 정당을 깨고 간판을 바꾼다고 해서 국민들이 눈감아주는 시대가 아니다. 조삼모사(朝三暮四) 같은 정치적 획책은 국민들의 분노와 가혹한 심판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나의 지방정치라는 작은 장에서 배울 수 있었던 책임이라는 단순하지만 무거운 교훈을 통해 다시 한 번 정치인들의 마음속에 초심이 돌아왔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