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2-11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정부인가
지금부터 정확히 20년 전인 1993년 11월12일, 국내 최초의 대형마트인 이마트 창동점이 개장하였다.
이어 1996년 유통시장 전면 개방, 1997년 대규모 점포의 허가제에서 등록제로의 전환 이후 1998년 롯데마트, 1999년에는 홈플러스까지 가세하면서 2013년 10월 현재 대형 3사의 매장 수만 전국적으로 390개로 크게 늘었다. 한국체인스토어협회에 따르면 2001년 201개였던 대형마트의 국내 점포는 올해 초 470개까지 늘어나면서 불과 10년 사이에 2배 이상 증가하였다.
매장 수뿐만이 아니다. 대형마트 탄생 10년 만인 2003년에 이미 백화점 매출을 앞질렀고, 지난해 말 기준으로 백화점 업계 전체 매출인 28조원 규모에 비해 국내 대형마트 3사의 매출액만 37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가히 폭발적인 성장세다.
하지만 대형마트의 고속성장 이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있다. 바로 전통시장의 붕괴다. 시장경영진흥원에 따르면 2004년 1천702개였던 전국의 전통시장은 지난해 1천347개로 대폭 감소하였다. 어디 이뿐이랴. 대형 유통업체는 대형마트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고 부지확보에 어려움을 겪자 2007년을 전후해 기업형 슈퍼마켓(SSM) 사업에 집중하여 현재 전국적으로 1천여개에 달하는 SSM이 골목상권을 점령 중이다.
한편, 올해 초 대·중소유통업의 상생을 위하여 대형마트의 영업시간 등을 제한하는 일부 규제를 하자 이번에는 변종 SSM으로 다시 판로를 확대한다. 이렇듯 닥치는 대로 폭식을 하는 대형 유통공룡들의 현란한 전술 앞에 전통시장뿐만 아니라 힘없는 골목상권, 영세 자영업자, 소상공인 등은 우르르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대형 유통업체의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나 언론들은 대형마트가 우리나라 유통산업에 대대적인 혁명을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소비자의 편익을 향상시키는 데 크게 일조하고 있다는 점을 들면서 정부의 어떠한 형태의 규제에도 반대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그들에게는 전통시장이나 골목상권의 몰락은 안중에도 없어 보인다.
필자는 지난달 경기도의회에 ‘경기도 상권영향평가위원회 구성 및 운영에 관한 조례안’을 입법예고한 바 있다. 경기도 내 특정지역의 대규모 점포 설치 및 운영이 경기도 내 지역 상권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고 그 피해를 방지하여 대·중소유통업의 상생발전 및 지역상권의 활성화를 위한 것이 주 내용이다. 그러나 벌써부터 대형마트의 이익을 대변하는 한국체인스토어협회는 대형 로펌의 자문까지 첨부하여 조례 심의에 대해 암묵적인 압박을 가하고 있고, 경기도의 집행부 역시 조례 시행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전해오고 있다.
정부는 우리나라가 WTO 회원국으로서 서비스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S)까지 들어가면서 대형마트의 규제를 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가운데, 이미 같은 회원국인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주요 선진국들이 등록제가 아닌 허가제, 기존 상권의 피해에 따른 출점제한, 영업시간 및 품목규제를 통해 자국의 중소유통업체를 보호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과연 누구를 위한, 그리고 무엇을 위한 정부인가.
<2013년 11월 12일(화) 경기신문에서 발췌>
2013-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