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1-19
낙서유감
(인천일보 2008.11.20자 경기논단 기고문)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했던가. 사람들은 빼어난 경관으로 이름난 곳이라면 전국은 물론 지구촌 어디든지 찾아다니며 여행의 즐거움을 만끽한다.
우리나라는 88올림픽을 기점으로 그 이듬해 완전한 해외여행 자유화가 되었고 그동안의 괄목할만한 경제성장과 국민소득 향상에 따라 19년째인 올해까지 해마다 꾸준한 증가 추세를 보이며 2007년 한해 동안 해외여행자 수만 해도 1천350만 명에 이르렀다.
통계로만 보면 이 시간에도 국민 4명 중 1명은 해외로 나갈 여행가방을 꾸리고 있는 것이며 이제는 해외여행이 우리나라 여가문화의 한 패턴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는 증거인 셈이다.
한편 해외 방문을 통해 국위 선양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일부 관광객들은 관광지 곳곳에서 시도 때도 없는 술판과 고성방가, 싹쓸이 쇼핑 등의 무질서한 행동을 보여 '어글리 코리안'이란 부끄러운 수식어를 떠안게 되었다.
해외언론에서도 이런 한국 관광객의 추태를 상세히 보도하고 있으며, 이런 모습을 반영한 탓인지 종종 외국영화를 보다보면 한국인은 추하기 그지없는 '어글리 코리안'으로 표현되고 있어 안타까움을 감출 수가 없다.
아울러 필자의 견해로써 또 하나의 가장 아쉬운 점이 '낙서 유감'이다.
경기도를 비롯한 국내의 많은 문화유산들이 몸살을 앓고 있듯이 세계 곳곳의 문화 유적지에서도 한글 낙서가 쉽게 눈에 뛴다.
펜을 사용할 뿐만 아니라 돌이킬 수도 없는 손상이 가도록 뾰족한 것으로 긁어내어 이름을 새기기도 한다. 이런 낙서는 분명히 시각 폭력 내지 문화적 테러이며 문화 유산에 낙서를 하는 행위는 절대로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 관광객이 부쩍 증가한 유럽에서는 한국인이 경계 대상이 되어 관찰하고 있으며 에펠탑, 스페인광장, 구엘공원 등에서도 '○월○일 ○○왔다 감', '○○야 사랑해' 등의 한글 낙서가 부끄러운 얼굴을 내밀고 있다.
역지사지로 생각해보면 외국 관광객이 덕수궁 돌담길에 낙서를 한다고 생각해 보라. 말리거나 경찰에 신고라도 해야 할 것이 아닌가.
외국여행은 출국을 하는 순간부터 개인이라는 단순한 개념이 아니라 국가라는 의미가 부여되는 것이다. 이처럼 남의 나라의 문화 유산과 자연 경관을 해치는 미성숙한 해외관광 행태는 문화 교류를 통한 상호 이해의 장이 되지 못하고 국제적 망신거리가 될 뿐 아니라 결국은 국가의 이미지 손실이라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여 이미지 복구를 위해서도 막대한 비용이 투입된다. 반면 지난 2월 일본의 여대생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탈리아 피렌체 성당의 기둥과 벽면에 학교와 이름을 적어 놓은 것을 다른 일본인 관광객이 발견하여 학교 측에 항의한 사건이 일본 사회에서 큰 파문을 일으킨 바 있어 우리와는 대조를 보이고 있다.
그 이후 학생은 정학 처분을 받았고 학교 관계자와 함께 피렌체 성당을 방문해 보수 비용으로 10만엔을 받아 달라며 사죄했다고 한다.
이 학생의 사죄 방문은 이 사건에 대한 문제 인식을 가진 일본 사회의 눈에 보이지 않는 요구가 내재된 것이라는 점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다.
앞으로 이 사건을 타산지석의 기회로 삼아 글로벌 스탠더드에 준하는 성숙한 여행문화를 습득할 수 있도록 효율적인 사전교육 프로그램의 개발이 절실하며 이를 위한 제도적인 뒷받침 또한 동반되어야 할 것이다.
부디 새해에는 모든 국민들이 지병과도 같은 낙서벽을 버리고 자신들이 계획한 해외여행을 통해 새로운 경험과 넓은 세계를 체험하여 진정한 호연지기를 꿈꾸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한글 또한 부끄러운 한글 낙서에서 이제는 아름다운 한글로 다시 태어나기를 기대해 본다.
/조복록 경기도문화관광해설사
2008-1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