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부터 십수 년이 흘렀다. 올해는 추석이 무척이나 더웠다. 거리에는 반바지에 반팔을 하고 다니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어렸을 적 어머니께서 추석 때 입으라고 점퍼를 사주셨던 기억을 뒤로 하며 나 또한 너무 더위 넥타이를 풀고 와이셔츠소매를 팔꿈치까지 올리고 지냈다. 차례를 지내고 친척집에 잠시 들렀었는데 집에 도착하니 집이 시원했다. 미리 에어컨을 가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도대체 추석날 에어컨이라니! 돈 주고 물 사먹던 날 느꼈던 것이 돈 주고 물을 사서 마셔야 하는 세상이 올 것이라는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 대한 약간의 충격과 뭔가를 잃어버렸다는 안타까움이었다면 올해 추석 때 난데없는 반바지와 에어컨을 보며 느꼈던 것은 “앞으로 올 것이 정말 올려나 보다”하는 두려움이었다. 그 두려움이 제발 올해 한 해 추석만이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지만 내가 처음으로 생수를 구입한 이래 지금껏 계속 물을 사서 마시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별다른 일이 없다면 계속 생수를 사 먹을 것 같다. 이제는 어색함도 없고 서글픈 생각도 들지 않는다. 돈이 아깝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앞으로도 그렇게 생각할 것 같다. 그러나 십년 후에도 추석날 반바지에 에어컨이 필요하다면 그 때가봐야 알겠지만 두려움과 절망감이 한꺼번에 몰려올지도 모른다. 나는 환경전문가도 아니고 환경운동가도 아니다. 환경문제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이 없다. 그냥 필부로서의 소박한 지식이 전부다. 예컨데 헌법에 보면 누구나 쾌적한 환경에서 살 권리가 있다는 것. 그리고 쾌적한 환경에서 살 권리가 침해 받는 유형의 대부분은 일조, 조망, 소음, 진동, 분진 등 일상생활에서 빈번히 발생하고 있는 것들 정도다. 알고 싶어서 알게 된 것이 아니라 살다보니 알게 된 그러한 정도의 지식정도밖에 없다. 나는 나의 이러한 권리가 침해 받으면 그 즉시 그 침해를 구제 받기 위해 분명 여기저기 하소연 할 것이고 동분서주할 것이다. 그 침해가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지금 내가 하소연 하고 싶은 것은 분명 나의 어떠한 권리가 환경문제 때문에 침해를 받은 것 같기는 한데 어디 하소연 할 데가 없다는 것이다. 예컨데 돈으로 물을 사먹을 수밖에 없고, 이것을 당연시 하는 현실을 하소연 하고 싶다. 추석이 무더워 져서 더 이상 점퍼를 입고 다니지 않아도 되며 반팔에 반바지에 에어컨이 필요한 작금의 현실을 하소연 하고 싶다. 한 달 전쯤 정부는 신산업정책의 일환으로 녹색성장이라는 정책을 내놓았다. 8·15경축사에서도 밝혔고, TV뉴스에서도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녹색성장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하는 장면을 여러 번 보았다. 아무래도 성장정책의 기조가 녹색으로 갈 모양이다. 기존의 산업정책이 대부분 개발성장위주였고 환경은 부수적인 제어장치로서의 역할만 했지만 이번에 정부가 마련한 저탄소 녹색성장은 먹고 살 방편도 마련하고 동시에 환경도 살리자는 정책으로 큰 틀의 변화를 주었다. 계획도 매우 구체적이다. 환경이라는 것은 지금 현재 살아 있는 사람에게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먼 훗날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의 후손들과도 관련이 있는 문제다. 나는 자라나는 내 자식과 아직 존재하지 않은 내 자식의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것이 비단 쾌적한 환경만이 아니다. 때때옷으로 대변되는 유년기적 추석에 대한 추억과 따뜻했던 어머니의 사랑을 내 자식에게도 물려주고 싶다. 그래서 먼 훗날 아직 존재하지 않는 우리 후손들과 추석에 대한 소중한 추억들을 시간을 초월해 공유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앞서 언급한 현 정부의 저탄소 녹색성장이 나의 소중한 추억을 후손들과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할 역할을 해주길 기대한다. “이제 더 이상 환경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언급하고 싶지 않고 더 이상 환경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게 되길 원하지도 않는다”는 어떤 환경전문가의 말이 가슴 깊이 파고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