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6-04
나눔과 배려 속의 섬김
2008. 6. 12(목) - 경기일보 칼럼 -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란 고귀한 신분에 따르는 도덕상의 의무를 뜻한다.
초기 로마의 왕과 귀족들은 평민보다 앞서 솔선수범과 절제된 행동으로 국가의 초석을 다졌다. 특히 포에니 전쟁 때에는 전쟁세를 신설, 재산이 많은 원로원들이 더 많은 세금 부담을 감수했다. 그들은 제일 먼저 기부를 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수레에 돈을 싣고 국고에 갖다 바쳤다. 이것을 본 평민들도 앞다퉈 세금을 내게 됐다.
끊임없는 전쟁으로 국고가 바닥이 나자 전시국채를 발행, 유산계급과 원로원 의원 및 정부 요직에 있는 사람들만 구입토록 했다. 평민들에겐 전비 부담을 요구하지 않은 것이다. 또한 평민들보다 먼저 전쟁터에 나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
이같은 ‘노블레스 오블리주’ 미덕은 중세와 근대 사회에서도 조직을 이끄는 리더십의 표본으로 간주됐다. 사회가 혼란에 휩싸이면 대중들은 본능적으로 움츠리며 소극적 자세를 취한다.
최근 경제위기를 맞은 우리나라에서 사회지도층 인사의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강조되는 것은 이같은 맥락에서다.
갈수록 골이 깊어지는 사회 양극화와 계층간의 갈등, 개인주의를 넘어서 이기주의의 극치를 달리는 사회현상들을 볼 때 ‘노블레스 오블리주’, ‘나눔과 배려 속의 섬김’이란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계층간, 지역간, 세대간의 갈등을 해소하고 사회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에서는 일자리 창출, 유가급등에 대한 처방조치를 내놓고 있지만 이러한 급조된 정책들이 과연 얼마나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할 지는 의문이다.
국민을 섬기는 마음이 정책의 근본이 되지 않고는 제대로 된 정책이 나올 수 없을 것이다. 도의회는 민의의 대표기관이다. 도의원은 각 지역의 대표이고 기준이 되어야 한다.
‘過猶不及(과유불급)’ 지나침은 오히려 미치지 못함과 같다. 이는 ‘중용(中庸)이 가장 귀중함’을 이르는 말이다. 과도한 욕심은 결국 화를 부르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우리 의회는 물론 사회 지도층의 가치관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외면과 욕심이 아닌 나눔과 배려로, 권위와 강압 대신 섬김과 받듦으로 국민을 위한 도정을 펼쳐 나가야 한다. 도의회 조직 내에서 서로를 위한 나눔과 배려는 우리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누구든 자신에게 있어 풍요로운 세상, 행복한 세상을 꿈꾼다. 다가올 미래에 대하여 끝없는 희망과 차원 높은 삶을 동경한다.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하고 완성 시킬 수 있는 것은 오직 나눔과 배려 뿐이다. 그러기에 서로에 대한 나눔과 배려는 이제 단순히 남을 위하는 것만이 아닌, 자기 자신을 돌보는 일이며, 성공을 위한 값진 요소이자 가장 확실한 미래에 대한 투자다. 이것이야 말로 우리 사회에 널리 확산되어야 할 사회적 가치이자 행동 양식이다.
원문출처 : http://www.kgib.co.kr/new/03_opinion/opinion_news.php?cate=77&page=1&idx=292589
2008-0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