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5-26
촛불든 아이들에게 어른노릇
2008. 5. 30(금) - 경인일보 칼럼 -
동화 작가이기도 하고 초등학교 교감이기도 한 김은희 선생님이 쓴 '사람마다 향기가 있네요'라는 동화가 있다. 엄마 향기, 아빠 향기, 누나 향기, 좋은 사람에게서 나는 향기, 나쁜 사람에게서 나는 향기를 소재로 아름답게 쓴 이야기인데, 주인공인 아들에게서 엄마가 맡은 냄새는 나무 냄새이다. "우리 아들 마음에서는 아주 좋은 향기가 나는구나. 단비를 흠뻑 맞고 자라는 싱싱한 나무 냄새가 나는데…"
그런데 싱싱하게 자라야 할 우리의 아이들이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섰다. 먹거리와 교육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이제 나도 당당한 공식적 주체라는 것이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공동선의 가치를 깨우쳐야 하기 때문에, 어른들에게는 허용되는 자유가 아이들에게는 어느 정도 유보되어야 한다는 게 어른들끼리 해 놓은 합의이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은 그에 대한 거부 의사를 촛불을 드는 몸짓으로 나타내 보이고 있다.
나무와 촛불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미래지향적이라는 것, 즉 미래에 대한 소망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단비를 맞고 싱싱하게 자라는 나무에는 무성한 거목이 내재해 있고, 촛불은 무엇인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소망을 담고 있다. 나무와 촛불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를 하나로 묶으면 싱싱한 나무가 고운 촛불을 들고 있는 모습이 나타난다.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얘들아, 꿈을 지니고 무럭무럭 자라서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도 되고 나라의 큰 대들보도 되어라'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으랴. 촛불은 나무를 태울 수도 있다. 우리가 걱정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미친 소, 미친 교육' 구호를 외쳐대고, 대통령을 명박이라고 부르면서 매도하는 모습은 아무래도 고운 소망을 표상하는 촛불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아이들은 잘못이 없다. 잘못이 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어른 책임이다. 나무처럼 무럭무럭 자라야 할 아이들이 자신들을 태울지도 모르는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향하는 데에는 누구를 막론하고 어른들의 잘못이다. 본을 잘못 보여서이든, 국가 정책 과정의 문제 때문이든, 공부에만 매달리도록 강요하는 우리의 사회문화적 배경이든, 아이들의 촛불에는 어른들에 대한 저항의 의미가 담겨 있다. 우리 어른들은 이것을 깊이 인식하여야 한다. 모든 생명들은 개체 완성을 위해 전력을 다한다. 지혜롭고 예절바르고 튼튼한 사람으로 자라고 싶어하는 우리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이러한 환경을 만들어 주지 못한다면 그 사회의 앞날은 뻔한 것이다.
우리 어른들은 또한 청소년 쪽으로의 권력 이동에 대해서도 유념해야 한다. 권력의 원천 중 하나는 정보이다.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는 개인이나 집단이 힘을 갖게 마련이다. 칭기즈칸은 우리나라의 역참제도와 비슷한 정보전달 체계를 운영해 정보전에서 승리함으로써 대몽골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다고 한다.
오늘날 IT 시대의 정보력은 인터넷 활용 능력에 달려 있다. 요즘 아이들은 인터넷의 성장과 함께 성장한 세대들이다. 어른들은 정보기기의 사용에서 아이들보다 훨씬 뒤처져 있다. 스피디한 정보력은 아이들이 월등하기 때문에 권력이 계속해서 아래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아이들에 대해서 제어기능을 하는 것은 어른의 '타이름'인데, 타이름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지식, 정보, 경험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어른들보다 더 많이 알고 있는 요즘 아이들에게는 어른들의 타이름이 먹혀들지 않는다.
어른들이여, 아이들에게 성실하고 창의적인 사람(Good & Smart Person)이 되라고 타이를 수 있기 위해서는 어른 자신부터 순수하고 도덕적이고 정의롭고 창의적인 사람이어야 한다. 이래저래 어른 노릇 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시대이다.
원문출처 : http://www.kyeongin.com/news/articleView.html?idxno=380326
2008-06-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