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헌법 제2조 2항

등록일 : 2007-10-22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8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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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 10. 22 - 기호일보 기고문 -

  지난 5월 중순 소말리아 해역에서는 현지 무장단체에 의해 마부노호의 한국인 선원 4명이 피랍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피랍사건이 발생한 지 5달이 경과한 현재까지 이들의 석방과 관련해 희망적인 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있으며, 이들의 석방에 필요한 합의금은 사건발생 초기의 70만 달러에서 현재는 100만 달러까지 치솟은 상황이다. 이번 피랍사건은 북한에 의해 납치된 이들을 제외하고 대한민국 국민이 해외에서 피랍된 사건 중 최장기간 억류되고 있는 사건이며, 억류가 장기화 될수록 사건의 해결은 더욱 요원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인질 석방 협상의 고착상태가 지속되면서 일부 국민들과 피랍 선원의 가족들은 외교부와 해양수산부, 국정원 등 관련 정부 부처가 이번 사태의 해결에 적극적인 역할을 담당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관련부서들은 서로 떠넘기기를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얼마 전 아프가니스탄 피랍사건 당시에는 대통령까지 앞에 나서 공식 담화문을 발표했었지만, 소말리아 피랍사건에 대한 청와대의 입장은 분명해 보이지 않는다. 이처럼 피랍 사태가 지지부진한 상태로 흘러가자 급기야 피랍 선원의 가족들은 국내외의 종교단체들과 여러 정당에 사태해결을 위한 도움을 공식적으로 요청한 상태이며, 부산시를 비롯해 많은 사회종교 단체와 국민들 사이에서 억류된 선원들의 석방을 위한 모금운동과 관심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지난 아프가니스탄 피랍사건을 떠올리게 된다. 이번 피랍사건과 아프가니스탄에서의 피랍사건은 두 가지 측면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첫 번째는 이들이 모두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국민들이라는 점, 두 번째는 불법무장단체에 의해 납치되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사태해결을 위한 정부의 접근방식이나 시각은 너무도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국정원장까지 현지로 급파되어 인질들의 석방을 위해 노력했던 아프가니스탄 피랍사건과 달리, 소말리아 피랍사건의 경우 가시화된 노력은 전혀 눈에 띄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외교부는 소말리아 사태해결과 관련해 외교부의 예산으로 석방금 지불이 어렵다는 점, 불법무장단체와의 합의를 할 경우 국제사회에서 외교적 압박을 받게 된다는 점, 유사 사건 재발 가능성이 있기에 돈을 지불하고 인질을 돌려받는 선례를 남겨서는 안 된다는 점을 근거로 사태해결에 소극적인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물론 지난 2006년 4월 소말리아 해역에서 납치되었다가 117일만에 석방되었던 동진호 선원들의 사례에서도 외교부는 소말리아 정부 및 무장단체와 비밀리에 협상을 진행해 왔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이번 사건의 해결에서도 비슷한 해결방식을 선호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와 같은 외교부의 태도는 아프가니스탄 피랍사건 당시와는 너무도 큰 차이를 보인다. 국정원장, 대통령 특사를 비롯해 정부 고위관료들이 총동원되어 불법무장단체인 탈레반과 협상을 진행한 것이나 탈레반 측에 거액의 석방 합의금을 지불했다고 여러 외신들이 앞 다투어 보도한 것을 보더라도 외교부의 논리는 궁색해 보인다.

 소말리아 피랍사건을 바라보면서 나는 안타까움을 넘어서 답답함까지 느끼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 2조 2항은 “국가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재외국민을 보호할 의무를 진다.”고 명백히 밝히고 있음에도 정부는 그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고 있지 않는 것이다. 혹은, 사례에 따라 자신들의 일관성 없는 기준으로 국민생명의 경중을 저울질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국민들이 정부에 대해 분노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원칙은 지켜질 때 힘을 발휘하는 법이다. 헌법기관인 정부가 헌법에 의해 부여된 ‘재외국민 보호 의무’를 이번 사건에 있어서는 성실하게 이행하지 않고 있다는 인식에서 국민들은 분노하는 것이며, 그동안 강조해왔던 ‘불법무장단체와의 금전적 거래 불가’ 원칙을 아프가니스탄 피랍사건에서 스스로 위반하면서까지 적극적인 해결책을 모색했던 것에 비해 이번 피랍사건에 대해서는 별다른 노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 한 번 더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정부의 태도를 보며 ‘형평성’을 지적하는 것은 정부가 스스로 세운 원칙을 지키지 않은 탓에 벌어진 자업자득이다.

 이제라도 정부는 소말리아에서 납치된 이들의 석방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비밀리에 진행하는 조용한 협상도 좋고, 원칙을 고수하겠다는 정부의 입장도 모두 존중하지만, 정부 스스로 헌법에 의해 책임지워진 ‘국민 보호의 의무’를 성실하게 이행하고 있다는 것을 전국민이 인정할만한 수준까지 정부의 가시화된 노력을 끌어올려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