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0-04
법(法)을 지킨다는것
누구나 한 번쯤은 로빈슨 크루소처럼 혼자 사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좌측통행을 하든 우측통행을 하든 방해받기 싫을 때 말입니다. 무한한 자유를 마음껏 누리고 싶은 게 모든 사람의 꿈이 아닐까요?
어릴 때부터 법을 잘 지키라고 배웠습니다. '도둑질하지 마라.' '남을 때리지 마라.' 등등 주로 '무엇무엇 하지 마라'가 법이었습니다. 도무지 친해지기 어려운 게 법이었는데 어찌어찌 대학을 진학할 때 법학을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법을 공부하다보니 이 법이란 놈의 역할이 참으로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세상사가 법을 빼고는 아무 것도 되는 일이 없을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10년 만에 졸업을 하면서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법학공부를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법의 규제가 결국은 우리 모두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기 위한 것이란 작은 깨달음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해서 저는 법이란 놈과 친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한데 많은 분들의 법에 대한 감정은 별로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법은 불편한 것이고, 법은 가진 자들의 전유물이고, 종국에는 법이 공평하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친구 입장에서 법이란 놈에게 미안하지만 참으로 안타깝게도 그러한 주장에 정면으로 반박할 용기는 없습니다. 단지 친구를 위해 한마디 변명을 대신한다면 신이 아니고서야 어찌 칼로 두부를 자르듯 명쾌하게 51대49를 가를 수 있겠습니까? 우리 모두 그렇게 노력해 가는 것이지요.
지난주에 어머니 칠순을 맞아 가족들과 친지 분들을 모시고 한바탕 잔치를 열었습니다. 12남매의 맏이로, 한 남자의 아내로, 그리고 4남매의 어머니로 간단치 않은 평생을 살아오신 어머니께 효자 노릇 한 번 하려고 잔칫상을 마련했습니다. 색동옷 입고 춤도 추고, 못하는 노래도 들려드리려고 한껏 부풀어 있었습니다.
"어이쿠!" 제가 선출직 공무원이라서 가족을 빼고는 오신 손님들께 식사대접을 할 수 없다는 선거관리위원회의 경고가 두 시간 전에 날아들었습니다. 기부행위가 되어서 제가 선거법위반이 되는 것은 물론, 식사를 하신 분은 50배의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는 청천벽력이었습니다. 평소 선거법에 대해선 웬만한 무권해석(?)을 내릴 정도로 자신이 있었는데 원숭이가 나무에서 떨어진 격이었습니다. 벌여놓은 잔칫상을 거둘 수도 없고 참으로 난처한 상황이었습니다. 부랴부랴 선거법관련 안내문을 만들고, 오신 손님들께 사죄를 드렸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친구분들과 세 동생들의 친지들께는 얼굴을 들기도 어려웠습니다. 식사도 못하고 돌아가신 분들께 지면을 빌어 감사와 사죄를 함께 드립니다. 평생에 베풀어 주신 고마움을 간직하겠습니다.
우리는 법을 모르고도 법을 잘 지키면서 살아갑니다. 나름대로 '이것이 법이다'라는 기준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난주의 제 경우처럼 법을 모르면 제대로 지킬 수 없는 경우도 있으니 살아가면서 법의 동향에도 조금은 신경을 써야할 것 같습니다. 법을 지킨다는 것은 나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받는 일이니 말입니다.
지극히 사적(私的)인 일을 공적(公的)으로 검토해서 어머니 칠순잔치를 치르지 말아야 하는 못난 아들이 될 수밖에 없을 때는 어쩌냐구요? 다른 방법으로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도록 노력해야겠지요. 그래도 양이 차지 않으면 제 경우엔 눈 딱 감고 로빈슨 크루소처럼 혼자 사는 상상을 한 번 해봅니다. '어머니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사랑합니다. 어머니!'
2007-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