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9-06
선거는 축제다!
2007. 9. 9(일) - 기호일보 기고문 -
작년 여름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사퇴와 이명박 서울시장의 퇴임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른바 '빅 투'의 대권을 향한 경선레이스는 지난달 20일 이명박 후보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이번 경선이 한국의 선거 역사의 제도적 발전에 기여한 바가 상당하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나라당 경선이 과연 국민들에게 제도적 발전으로 인식되어 진실한 감동을 주었는지는 되새겨야할 필요가 있다. 긴 시간 동안 후보 간의 정책과 공약사항 등은 거의 부각되지 못했고, 후보 개인의 재산문제, 사생활 문제만이 쟁점화 되었다는 점은 아직도 우리나라 정치가 극복해야 할 과제가 많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국민들은 이명박 후보의 '대운하 건설 공약'과 박근혜 후보의 '줄·푸·세 공약'의 세부적인 내용은 모른 채 이명박 후보의 재산 의혹, 박근혜 후보의 사생활 의혹만을 짜증스러울 정도로 많이 들었다. 물론, 한 국가의 지도자가 되기 위해 국정수행능력과 더불어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겸비해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그러나 일 년 넘게 진행된 경선 레이스를 돌이켜 보면 정책에 대한 비전 제시, 실현가능성에 대한 검증보다는 후보 과거사에 대한 헐뜯기가 대부분을 차지했었다. 각 후보 진영에서는 경선 이후의 공천권과 관련한 살생부와 같은 후진적인 발언이 하루가 멀다 하고 새어 나왔고 같은 당원 사이에서도 서로 얼굴 붉히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과연 하나의 당적을 가진 후보와 당원이 맞는지 하는 의구심이 생길 정도로 경선과정은 치열했고 급기야는 이전투구의 양태를 띠게 됐다.
현재까지 당지지도 측면에서 한나라당이 50% 이상의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지만 그에 반해 부동층도 만만치가 않다. 이 같은 현상은 국민들이 정치 자체에 대해 혐오와 염증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각 후보 진영은 이런 민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상대방 후보의 의혹을 확실한 근거도 없이 물고 늘어지고, 트집을 잡으면서 일 년을 보냈다. 각 후보 진영은 답답한 국민들의 가슴을 뻥 뚫어줄 생각보다는 개인의 이익과 실리만 추구하며 밀리면 끝장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경선에 임했다. 경선 중에 불거진 금품수수 의혹, 매표 의혹, 의원들의 줄서기는 새로운 정치, 신나는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를 저버렸다.
한나라당은 1997년 경선에서의 불복사태를 교훈삼아 이를 방지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이렇다 할 큰 사고 없이 대선 경선을 마무리 지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있는 경선으로 평가받고 있다. 양대 진영에서 불만이 터져 나오거나 경선중도포기 등의 의사를 내비칠 때마다 한나라당의 지도부와 원로급 인사들은 중재안을 마련해 두 후보 간의 합의를 이끌어 낸 것은 우리 정치에서 대화가 통한 해결책 마련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해주었다. 이와 더불어 대한민국 정당 역사상 최초로 후보검증청문회를 실시해 의혹으로 제기됐던 도덕성 문제들을 공론화시켜 국민들의 알 권리를 상당부분 충족시켜 준 것 또한 상당히 진일보한 우리 정치의 단면을 보여주기에 충분한 사례로 꼽을 수 있다. 한편에서는 검증청문회가 아니라 해명청문회였다고 비하하기도 했지만, 의혹에 대한 해명할 기회를 주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제도화된 청문회는 앞으로 정치인의 도덕성을 평가할 수 있는 좋은 시스템으로 성장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정당 역사상 최초로 도입된 것이기에 미흡한 편이 없지 않아 있었겠지만, 이는 기술적인 문제일 뿐 시도 자체가 비판받을 것은 아니다. 첫 술에 배부르기보다 우리 정당들이 하나하나 새로운 제도를 도입해 나가면서 국민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정치가 진정한 정치일 것이다.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 결과를 TV앞에서 시청하던 국민들은 아름다운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다. 승자는 패자에게 손을 먼저 내놓으며 도움을 요청했고, 패자 역시 깨끗하게 결과에 승복하며 당을 위해 헌신할 것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장면이 많은 국민들이 원했던 멋진 정치다. 선거는 국민들이 신나게 참여하고 그 누가 승자가 되든 간에 상관없이 박수를 칠 수 있는 축제의 장이 돼야 한다. 앞으로 여권의 후보가 정해지면 본격적으로 12월 대선을 향해 또 한 번의 레이스가 시작될 것이다. 지난 과거의 대선처럼 폭로와 음해가 난무하는 선거를 지양하고, 우리 국민들에게 월드컵 때와 같이 감동과 재미를 주는 선거를 후보들은 지향해야 할 것이다. 어느 후보가 승자가 되어도 모든 국민들에게 선거 자체가 즐거웠고 아름다웠던 선거로 기억될 수 있는 추억을 우리 정치인들이 만들어 주길 바란다.
2007-0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