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 혼란에 빠진 한국 안보비전

등록일 : 2007-09-17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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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 9. 16(일)  - 중부일보 기고문 -

국제무대에서 중국과 러시아는 21세기 접어들어 그 국력과 외교력의 차원에서 부상하는 속도와 폭을 더욱 넓혀나가고 있다. 특히 경제적인 성장과 더불어 군사적 측면에서 상당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2005년에는 사상 최초로 중국과 러시아는 합동군사훈련인 ‘평화사명-2005’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으며, 얼마 전인 2007년 8월 중순에는 참여국의 폭을 넓혀 상하이 협력기구 가입 국가들과 함께 ‘평화사명-2007’ 군사훈련을 대규모 수준으로 치루어 내면서 세계에 새롭게 부상하는 군사대국의 측면을 보여주었다. 중국과 러시아는 이와 같은 합동군사훈련 등을 통해 9·11 사태 이후 심화되고 있는 미국의 일방주의적인 외교정책에 대한 대항세력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는 것 같다.

 중국과 러시아는 군사훈련뿐만 아니라 외교정책을 통해서도 미국을 견제하고 있다. 북핵 문제가 불거졌을 때, 중국과 러시아는 군사적 제재를 가하려던 미국의 UN 안보리 결의안에 반대하며 자신들의 이해관계가 얽힌 국가에 대한 적극적 옹호의견을 피력했다. 동시에 다자주의 성격을 띠는 6자회담을 통한 북핵 문제해결을 요구하며 한반도 전체가 미국의 영향권에 편입되는 것을 막기 위해 노력했다. 이 같은 행위의 근저에는 최근 중국과 러시아의 지도자들이 역내의 안보질서와 평화는 역내국가들 간의 협력을 통해 해결되는 것이 당연지사라는 주장이 암시적으로 내포되어 있다.

 중국과 러시아의 군사적·외교적 부상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은 일본, 호주와  합동군사훈련을 실시하는 등 동북아시아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기 하기 위한 노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 같은 현상유지의 노력은 지난 4일 이루어진 인도를 포함한 합동군사훈련으로 발전됐다. 중·러의 급부상과 미국의 현상유지를 위한 노력은 한반도를 사이에 두고 대륙세력들과 해양세력 간의 패권경쟁의 측면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제 한국은 이와 같은 역동적인 국제질서에 부합하는 안보정책에 대한 구상을 시급하게 준비해야 할 때다.

 아시아 지역에서의 세력싸움이 점점 가시화 되고 있음에도 대한민국의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안보관 탓에 두 세력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되어버린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우리나라는 미국과의 동맹의무를 다하기 위해 평화유지군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등지에 대규모로 파병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미국에게 동맹대접을 받고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이 같은 상황은 비단 미국의 문제만이 아니라 한국이 자신에게 우선적인 안보정책의 목적과 전략이 부재한 상황에서 표리부동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북한과 한 민족이면서 군사경계선을 경계로 대치하고 있는 특수한 상황에 있기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미국 정책만을 좇을 수도 없거니와 그렇게 하는 것이 진정한 동맹은 아닐 것이다. 우리 대한민국도 이제 상당한 국력과 경제력을 보유하고 있는 국가이기에 미국에 종속하는 동맹이 아닌 대등한 수준의 동맹을 유지하면서 UN이나 6자회담 등을 통한 다자주의 활동을 함께 해 나가는 것이 옳은 길일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인 동맹전략과 안보관의 확립은 소홀히 한 채 군 가산점 제도 재도입 문제, 군 복무기간 단축과 같이 미시적이면서 소모적인 논쟁만을 거듭하면서 대한민국은 점점 국제사회에서 해야 할 역할을 빼앗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 아쉽다. 물론, 이러한 논의들도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것이지만 장기적인 전략과 함께 병행되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우물 안 개구리가 되고 말 것이다.

 국토 크기, 인구 수 등과 같은 주어진 환경 자체는 우리 스스로 군사대국이 될 수 없다는 현실적 제약을 안겨다 주고 있다. 그럴수록 우리는 현명한 군사외교를 통해 우리의 가치를 상승시켜야만 동북아 안보질서 내에서 우리만의 목소리를 키울 수 있을 것이다.  군사적·경제적·외교적 측면에서 다양한 전략이 수립되고 추진되어야 함은 비단 한국의 국제사회의 영향력에 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국가의 안보의 핵심은 바로 생존이다. 지금까지 한국사회에서 보여준 안일한 안보관과 목표의 부재를 넘어 다양한 세력이 각축하고 있는 한반도의 주변 정세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전략적 패러다임이 필요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