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박광순님께

등록일 : 2007-08-07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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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 8. 7(화)  - 중부일보 기고문 -


엊그제 경기소방재난본부 최진종 본부장의 수원 중부소방서 방문이 있었습니다. 일선 소방서의 출동태세를 확인하고 지역별 재해대책을 논의하는 공식일정입니다. 부족하지만 스스로 소방가족이라고 자부하는 터라 관심을 가지고 함께 참석했습니다. 연일 휴가철 안전사고 소식이 뉴스에 터지는데, 시민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경기소방의 모습을 보며 마음 든든했습니다. 지면을 빌어 소방관들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공식 일정이 끝나고 서장실에서 커피를 한 잔 마셨습니다. 터키, 대만 등지에서 재난구조활동을 펼쳤던 최진종 본부장의 무용담을 시작으로 소방서 신설과 인원확충, 그리고 멀티소방관제 등에 관한 이야기가 오고 가는 중이었습니다. 갑자기 서장실 스피커에 “수원우체국에 화재발생, 전 차량 출동”이라는 구내방송이 터졌습니다. 그 때까지 차분하게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소방서장께서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던진 짤막한 혼잣말, “수원우체국이면 지하밖에 없는데?”

도무지 긴박감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내심 실제상황에 당황했었는데 노련한 소방관의 한마디에 안심이 되는 희한한 경험이었습니다. 이내 “수원우체국 화재 자체 진압”이라는 방송이 이어지고 출동은 없었습니다. 수시로 벌어지는 상황에 대한 면역도 있었겠지만 어떠한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지휘관의 면모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한바탕 상황이 정리되고, 경기소방의 발전을 위해 의기투합을 다짐하며 자리가 파할 때 쯤, 소방서장께서 책을 한 권 건네 주셨습니다. ‘추억 부르는 봄’이라는 제목, 본인의 여덟 번째 시집이었습니다.

처음 중부소방서장으로 부임했을 때 은발에 검게 그을린 얼굴이 꼭 가을 들녘에 서 있는 농부님 같은 편안한 모습이라 “이런 분도 계셨구나?” 했었는데, 그 편안한 미소에 이만한 시세계가 숨어 있을 줄이야? 詩人 박광순님께 무럭무럭 솟아나는 존경의 마음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휴대폰 문자로 쓰는 ‘80바이트의 예술’을 본란에 주장했던 왕년의 문학청년이 최근, 경기도의회 자치행정위원회 김영환 위원장님의 시집 ‘노예’를 받아들곤 엄청난 부러움과 부끄러움으로 몸 둘 바를 몰랐었는데, 이제 박광순 서장님의 여덟 번째 시집을 읽으면서는 기쁨과 행복감이 가득합니다.

복잡한 정치적 상황에 아프간 인질 사태로 어수선한 마음이었는데, 가까운 분들의 시를 읽으면서 후텁지근한 여름밤이 다소나마 시원해지는 것 같습니다. 권력투쟁에 나선 사람들, 그리고 탈레반 지도자들도 한 발짝 물러설 수 있는 용기가 있으면 좋을 텐데….

본격적인 휴가철입니다. 고3 녀석 핑계로 여행계획은 아예 세우지도 않았지만 올여름 휴가는 참으로 즐거울 것 같습니다.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던 중3 딸애가 펄벅의 ‘대지’를 벌써 다 읽고는 아빠의 추천이 고마웠던 모양입니다. 앙드레 지드의 ‘좁은문’을 권해 주었습니다.

‘할머니께 다니러 간 막내가 돌아오면 어떻게 책읽기를 시킬까?’ 즐거운 고민입니다. 우리 집, 찜통 같은 아파트에 광교산 계곡의 시원한 바람 같은 책읽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시인 박광순님께 쓴 쐬주 한 잔 사야할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