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8-03
아프간 피랍사태에 대한 단상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인 23명이 탈레반 무장군인들에 의해 피랍된 지 오늘로 19일째를 맞고 있다. 이미 2명의 고귀한 생명이 희생되었고, 남은 21명의 인질 역시 언제 희생될지 모르는 절박하고도 위급한 상황에 처해 있다. 최초 피랍 당시 이들의 아프가니스탄 활동에 대해 비난하고 질타하던 상당수의 국민들도 이제는 모두 하나가 되어 무사귀환을 매일같이 기원하고 있다. 나 역시 자녀를 둔 아버지의 간절한 심정으로, 우리 대한민국의 아들딸들이 제발 무사히 귀국할 수 있기를 매일같이 간절히 기원하고 있다.
비록 우리 정부가 다방면으로 외교적 총력을 기울여 이번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이제는 탈레반 무장세력과 직접 협상에 나서기도 했지만, 정작 뚜렷한 해결책이 나올 것으로 생각되지는 않는다. 통탄할 일이다. 자국민이 납치되어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음에도 우리 정부가 나서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사실에 비통한 심정뿐이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직면한 국제정치의 현실인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번 사태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미국이나 아프가니스탄 정부, 그리고 탈레반 측의 입장은 서로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을 향해 달리고 있다. 미국은 그동안 고수해온 테러단체와의 비협상 원칙을 버릴 수도 없는 처지이며, 아프가니스탄 정부 역시 지난 3월 이탈리아 기자 납치 당시 풀어준 탈레반 지도자의 테러활동 등 반정부 행각을 계기로 탈레반 수감자와의 맞교환을 극구 반대하고 있다. 탈레반 무장세력 역시 수감자와의 맞교환 방식이 아니면 인질석방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비관적으로만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며칠전부터 한미 양국은 모두 ‘창의적 해법’을 한목소리로 주장하고 있다. 즉, 이번 사태의 당사자인 한국와 탈레반 무장세력, 그리고 미국과 아프가니스탄 정부 모두가 서로의 입장과 원칙을 적절하게 지키는 선에서 타협을 보고자하는 열망에서 도출된 해결책이다. 즉, 21명의 인질과 탈레반 수감자의 맞교환 형태가 아니라 수감자들의 사면형식 석방을 통해 모두가 실리를 취하는 방식이 제안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해결책 역시 아프가니스탄 정부에 대한 설득이 필요하다. 이러한 과정에서 아프가니스탄 정부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국가가 바로 미국이다. 즉, 이번 사태 해결의 실마리는 전적으로 미국에게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국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한국군 및 미군의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철군 요구시위나 반미시위 움직임은 지극히 우려되는 현상이다. 나는 지난 2002년 미군 장갑차에 의해 미순 양과 효순 양이 쓰러졌을 때, 온 국민과 함께 분노하고 애통해했지만 지금은 그때와는 전혀 상황이 다르다. 미국 역시 금번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으며, 적극적으로 해결방안을 찾고 있다. 이미 피랍자 가족들이 이번 사태를 이용한 반미시위를 거부한다는 의사를 표명한 것처럼, 미국은 현재 우리가 잡고 있는 가장 큰 희망의 끈이다. 미국이 군사작전의 실시 가능성을 배제하고 평화적인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우리 정부의 노력에 대한 비난 역시 자제되어야 할 것이다. 현재 우리 정부내의 모든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모든 경우의 수를 계산해가면서 우리 국민들의 생명을 지켜내고자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당장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서 관련 당국자들을 무작정 비난하고 정부의 대처능력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이번 사태의 해결에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정치·군사·종교·문화 등 복잡하고도 다양한 국제정치의 변수들을 예측하고 조정하기 위한 우리 정부의 노력에 격려와 힘을 부여해주어야 한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고 했다. 할 수 있는 범위내에서 노력해 최선을 다한 뒤에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는 말이다. 21명의 고귀한 우리 국민들이 무사귀환하기를 바라는 온 국민들의 염원은 하나가 되었다. 이제 하나로 뭉쳐진 이 염원을 고스란히 우리 정부와 미국에 넘겨주어 조속히 사태가 해결되도록 뒷받침 해주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희망과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보자. 분명히 가까운 시일내에 우리의 아들딸들은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고국의 땅을 밟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