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 싱크탱크가 필요하다

등록일 : 2007-07-09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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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 7. 8(일)  - 기호일보 기고문 -

 
 개인으로서 인간의 능력에는 분명한 한계가 존재한다. 현대인의 생활은 개인의 자급자족적 체제가 아니다. 즉, 우리의 일상생활은 자신의 노동의 결과물보다는 타인의 노동과 행위의 결과물에 의해 지탱되고 유지된다는 것이다. 한 예로 내가 입고 있는 양복 한 벌이 만들어지기까지 나의 노동력은 하나도 사용되지 않는다. 우리가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양복 하나가 만들어지기까지는 복잡한 공정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의 노동력이 필요한 것이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현대사회는 이와 같이 다양한 사람들의 노력과 노동의 결정체에 의해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일용품과 공업제품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을 엮어내는 다양한 제도들도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특히 다양성이 주목받는 현대사회에서 개개인의 선호에 부합하는 제도적 환경을 만들어 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국가의 근간을 결정하는 헌법으로부터 지방자치의 현장에서 만들어지는 조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규범과 규칙들이 제도라는 형태를 통해 국민들의 생활에 영향을 미친다.


 이미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제도적인 틀에 다양한 사회적 요구를 담아내기에란 역부족이다. 현실적으로도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는 기본적으로 주권의 소유자로서의 개인들이 정책참여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약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개성을 중시하는 현대사회는 다양한 개인들의 복잡한 선호가 얽혀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과연 이 같은 다양한 사회적 요구와 개인적 선호에 최대한 부합할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의 건설은 과연 가능한 것일까?


 나는 개인적으로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싱크탱크(think tank)의 활동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싱크탱크란 ‘두뇌집단’ 정도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어떠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또는 앞으로 어떤 중요한 일을 결정하고자 할 때 다양한 대안과 그 효과를 미리 예상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집단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미국은 싱크탱크의 역할이 일반화되어 있는 모범적 사례를 제공한다. 미국의 정치환경은 기본적으로 다원주의를 지향하고 있다. 즉, 민주사회의 구성원인 개인들의 다양한 선호가 정당뿐만 아니라 이익집단 그리고 개인들의 정치적 활동을 통해 정책으로 채택되고 실현되는 구조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적 영역뿐만 아니라 사적 영역에서도 자신들의 요구가 제도적으로 실체화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정책대안을 제시할 필요성을 충족시킬 수 있는 싱크탱크의 활동이 활발하게 진행되어 왔던 것이다. 이와 같은 구조적 환경은 다양한 요구와 선호들을 구체적인 정책 속에 녹여낼 수 있는 하나의 용광로와 같은 역할을 수행했고, 그것이 바로 다인종·다문화 국가인 미국의 정치·제도적 발전을 이끌어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한국의 정치적 환경과 사회적 환경은 제도적 현실이 따라잡기 어려울 정도로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과거 권위주의적 정권시대에는 다양한 사회적 요구가 분출되지 못했지만, 작금의 현실은 너무 많은 요구들이 무분별하게 쏟아져 나오면서 정치의 방향성 자체를 설정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바로 한국적 싱크탱크의 활성화가 요구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형태로 한국적 싱크탱크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세 가지 과제에 집중하자. 첫째, 재원 마련이다. 싱크탱크의 연구가 일부의 계층 아니 몇몇의 사적 이해관계에 치우치지 않기 위해서는 독립된 재무구조를 가진 기관을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 싱크탱크의 역할은 다양한 사회적 요구를 구체적인 정책대안으로 풀어내는 것이다. 이 같은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성향을 갖는 다수의 기관의 설립이 요구되며 상호 바람직한 경쟁체제를 통해 견제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제도적 수용을 용이하게 하자. 즉, 싱크탱크에서 아무리 좋은 정책을 만들어내도 이것이 제도로 실체화되지 못한다면 무용지물일 것이다. 그러므로 다양한 싱크탱크의 정책대안을 국가제도의 틀 안으로 포용해 낼 수 있는 정책결정과정의 합리화가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정치적 독선과 사회적 분열구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목소리를 하나의 용광로에 녹여내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그 결과물로써 구체적인 정책의 대안을 마련하고 준비하는 중간자로서 한국적 싱크탱크의 활성화는 한국정치의 환경변화와 제도적 합리화를 위한 또 하나의 선택지를 제공할 것이다. 한국정치의 발전을 인치(人治)보다는 시스템에 의존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