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누구야?

등록일 : 2007-06-25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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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 6. 25 (월)  - 기호일보 기고문 -


 한국인들에게 정체성의 시조(始祖)를 묻는 것은 어리석은 질문이다. 백이면 백, 열이면 열 모두가 나의 조상은 단군이라고 말할 것이기 때문이다. 즉, 한국인들에게 단일민족이라는 개념은 결코 생소한 이야기가 아니라 당연한 논리인 것이다. 그럼 미국인들에게 자신의 조상이 누구냐고 묻는 것은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사람들에게 과연 “콜럼버스가 또는 조지 워싱턴이 내 조상이요”라는 대답을 얻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미국과 같은 다문화·다인종의 사회에서 인종적 뿌리를 묻는 질문은 한국과는 다른 이유에서 우문(愚問)이 될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과연 한국사회과 미국과는 다른 순혈주의적 사회인가 하는 것이다.


 반만년 유구한 역사에 대한 자긍심은 문화적으로나 혈통적인 순수성의 측면에서 한국인에게 본질적으로 체화되어 있는 개념이다. 이같이 단일민족에 관한 자긍심이 강하다는 이야기는 타민족에 대한 배타성 또한 상당하다는 것으로 재해석 될 수 있다. 외국인들에 대한 한국인들의 일반적인 자세는 두 가지로 나누어 질 수 있다. 강한 국가의 국민들과 서구 사람들에 대해서는 상당히 부드럽고 상냥한 자세를 취하나 약소국이나 유색인종들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무시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사실이다. 이 같은 한국인들의 무의식적 정서는 우리사회 공동체의 일원인 혼혈인들에게도 은연중에 나타나고 있다.


 혼혈인들은 한국사회의 공동체를 구성하는 일원이다. 피부색과 상관없이 그들의 국적과 문화 그리고 먹는 음식까지 모두가 한국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혼혈인들의 문제는 극소수에 대한 차별을 다루는 데에 한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현재의 혼혈인에 대한 문제는 이와는 달리 사회 전 분야에 걸쳐 다루어져야 할 환경의 변화를 겪고 있다. 국제결혼의 확산과 다인종사회로의 변화는 사실 한국인들의 필요에 의해 발생한 사회적 현상이다. 즉, 3D업종 기피는 외국인 노동자의 유입을, 농촌의 노령화와 결혼난은 해외 여성을 배우자로 맞이하게 한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사회에서는 이들에 대해 차가운 시선을 보내고 있다. 엄연하게 한국국적을 가지고 있는 국민임에도 불구하고 순혈주의적 혈통에서 벗어나 있는 일부 귀화인, 혼혈인 그리고 외국인 배우자들에 대해서는 상당한 권리의 제약과 사회적 차별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와 같은 타민족에 대한 차별적 현상은 한국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캐나다에서는 영어사용권과 불어사용권간의 마찰이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었고, 프랑스에서는 아랍권 학생의 챠도르 착용금지법안이 통과되어 인종과 문화적 차별에 관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서구에서도 이와 같이 공동체 내부의 분열과 차별의 양상이 존재하고 있으며, 이에 관한 다양한 논의가 진행 중에 있다. 그러나 문제는 한국에서는 이 같은 주제를 다루는 논쟁 자체가 거의 전무하다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문제가 있다. 바로 “한국인은 누구야?”라는 질문이다. 한국은 기본적으로 속지주의가 아닌 속인주의를 택하고 있다. 어디에서 태어났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의 자식인가 하는 것이 국적을 결정하는 결정적 변수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인 부모를 둔 사람들도 한국인으로 인정받기보다는 외국인으로 이해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이미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한쪽 부모가 외국인인 사람들은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으로 인정받기보다는 한국인과는 다른 이질적인 존재로서 주변부에 머물러야만 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제부터라도 이들을 한국사회의 공동체적 질서 내로 포용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한국사회의 다문화주의 수용은 이들이 엄연한 공동체의 주인이며, 앞으로의 공동체의 발전방향을 함께 고민해야 할 구성원이라는 측면에서 논의되어야 한다. 한국적인 것은 머물러있는 정체성이 아니라 급변하는 사회적 환경과 변화를 공동체의 가치관에 흡수하고 이를 구성원들에 체화시킬 때만이 진정한 한국인의 정체성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문화와 인종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을 버리고 한국의 전통문화와 공존하고 병행발전할 수 있는 사회적 인식의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부모가 누구이든, 피부색이 어떻든 간에 다문화적 정체성을 가진 공동체의 인식적 틀이 마련된다면, 한국사회는 진정한 국제화와 세계화를 맞이하는 또 하나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인스 워드의 성공에 잠시 열광하기보다는 우리의 주변과 더불어 살아가는 소수의 ‘한국인’을 공동체의 내부로 끌어안는 포용의 모습이 필요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