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도, 네 것도 아니올시다"

등록일 : 2007-02-15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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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 2. 15 - 경기일보 기고문 -


 세상은 선(線)긋기를 참 좋아한다. 처지가 조금 다르다는 것만으로 그렇게 테두리를 두르려 한다. 어째서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한 집단이 다른 집단을 거리낌 없이 배척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남을 경멸하는 이들은 자기가 속한 터전이 언제까지나 공고하게 유지되리라고 믿는 것일까.

 얼마 전 한 모임에서 만난 어느 여류 작가와 나눈 대화가 이 아침에 문득 생각난다. 무엇보다 나를 궁금하게 한 건 “왜 글을 쓰나, 명예 때문에, 아니면 다른 무엇 때문에…?”

 그에게 이런 유형의 질문이 썩 어울려 보이질 않는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더욱 궁금했다. 한 동안을 멈칫멈칫하던 작가는 그러나 특유의 정제된 표정과 진지함으로 말을 이어갔다.

 “재주가 있다면, 쓰고 안 쓰고 하는 문제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어요. 글을 쓴다는 것이 저에게 이미 주어진 것이었다고 믿기에 쓰는 겁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것이기에 쓴다는 작가는 그러면서 작가의 재주는 재능이 없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대신해 주는 역할이라고 말했다.

 “어떤 목숨도 쓸모없이 세상에 나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렇다면 내게 주어진 건 무엇인가.”

 이 겨울 아침 바람이 차갑게만 느껴지는 건 어쩌면 우리가 지탱하고 있는 이 울타리가 점점 분화되고, 내 것과 네 것을 구분하는 각박함이 넘쳐나기 때문일 듯 싶다.

 요즘 들어 개발이 한창인 파주를 비롯한 경기도 어딜 가나 내 땅, 내 아파트가 값이 얼마고, 내 자식 학교는 어딜 가야 하며, 돈을 벌려면 이러이러 해야 한다는 물질 중심의 개인적 욕망이 분에 차다. 어딜 가나 개발이다, 개혁이다 해서 온통 판 뒤집기에 혈안이다. 온 사회 구성원들이 물질적, 외형적 가치에 골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하다.

 이 사회를 유지하는 도덕적 가치 기준, 이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정의 기준의 모호함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우리가 되돌아봐야 할 것은 이러한 가치의 불확실성과 도덕적 모호함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과 후손들의 미래적 삶의 윤택함을 담보할 수 있느냐의 것이다. ‘아니 올시다’ 라는 단언적 대답은 자명하다.

 우리가 살만한, 보다 윤택한 생활환경을 조성하는 일은 매우 필요한 일일 것이다. 택지개발을 통해 서민들이 살만한 공간을 확보해 주는 것도, 공원을 조성해 시민들이 쉴 수 있는 쉼의 공간을 확보하는 것도 매우 절실하다.

 그러나 전제되어야 할 것은 내 것 네 것이란 각박함이 아닌, 공동체적 테두리를 만들도록 유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환경개선이라는 하드웨어적 시스템과 정신적, 가치 중심적인 공동체적 정신이 살아 꿈틀거릴 때 살맛나는 세상이 되는 것이라 나는 확신한다.

 진정 우리가 바라는 좋은 마을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과 가치가 존중되고, 이웃간의 정이 넘쳐나야 하는 곳이다. 개인과 개인간, 단체와 단체간의 작은 테두리를 벗어던지고, 보다 큰 공동의 울타리를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경기도나 일선 지자체가 보다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은 결국 하드웨어적 환경개선이 아닌, 우리가 살아가는 이 마을에 우리의 삶을 담보할 정신적 가치를 불어넣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다 같이 사는 길이다. 현재의 삶의 공간은 내 것도 네 것도 아닌 우리 모두의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