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2-01
옛 것 그리고 새 것
2007. 2. 5 - 중부일보 기고문 -
수원시 장안구 파장동 383번지에 ‘이병원 가옥’이라는 국가지정 문화재가 있습니다. ‘중요민속자료 123호’로 1984년에 지정되었습니다. 조선후기의 중산층 주택으로 그 보존상태로 볼 때 이제 전국에 몇 남지 않은 소중한 문화재입니다. 수원의 첫 관문인 파장동에 옛 수원 사람들의 생활을 비춰볼 수 있는 전통 가옥이 보존되어 있는 것은 파장동 주민의 자랑입니다.
한데 이 자랑거리가 문제가 되어 문화재청까지 달려갔습니다. 5천명에 달하는 주민들의 서명까지 첨부한 탄원서를 들고, 주민대표들과 함께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피해를 해결하고자 대전정부청사를 찾았습니다.
문화재청 책임자의 ‘이병원 가옥’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은 앞에 이야기한 주민들의 그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문화재 주변 개발 등 주민의 재산권 행사의 제약에 대한 부분에서는 주민들의 ‘이전 요구’를 ‘불가’ 한 마디로 묵살할 만큼 단호했습니다.
그나마 무지막지한 ‘이전불가’가 아니라 문화재와 조화를 이루는 환경개선은 전향적일 만큼 적극적으로 고려하고 있다는 답변을 얻은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입니다. ‘이병원 가옥’을 중심으로 ‘전통 공원’을 만들고 주변 환경을 조화롭게 설계해서 살기 좋은 동네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한 것입니다. 애초에 ‘이병원 가옥’을 문화재로 지정한 것은 수원시의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이제 그 주변의 주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에도 수원시의 더 큰 의지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문화국가라고 자랑하는 나라치고 옛 것을 소중히 생각하지 않는 나라는 없습니다. 우리네 문화는 세대를 이어오면서 갈고 다듬고, 또 축적해 온 삶의 궤적이기 때문입니다. 영국 런던 도심에서 만난 한 건축현장은 이러한 문화에 대한 이해와 실천을 웅변으로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뚝딱 헐고 현대식 자재로 후딱 지으면 될 텐데, 조심스레 건물 내부만 덜어내고, 옛 건물 외벽에 지지대를 설치해 새 건물을 짓고 있는 모습이 참으로 놀라움 그 자체였습니다.
우리 동네 ‘이병원 가옥’이라고 그리 못하라는 법은 없지 않겠습니까? 개인적으로 재정이 허락한다면 그리고 그 후손들께서 허락하신다면 ‘이병원 가옥’을 매입해 문화재를 보존하고, 전통의 멋이 한껏 살아있는 내가 사는 주택을 짓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습니다.
돌이켜 보면 우리나라 문화재 관리가 엉성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오늘의 문화재청 책임자들이 많은 반성을 하고 있는 ‘독립문 이전’은 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개발논리에 밀린 문화재 관리의 소홀함은 문화국가의 수치가 아닐 수 없습니다. 땅만 파면 문화재가 득실거리는 이탈리아 로마의 지하철 건설은 하루에 한 삽 뜨기가 힘들다고 할 정도로 더딥니다. 고고학자들이 지하철 공사를 이용해 발굴을 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랍니다.
더욱이 파장동 주민들처럼 옛 것 때문에 오늘 새 것을 얻을 수 없는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겐 더욱 더 절실한 이야기입니다. 요는 조화가 필요한 것이고 우리는 충분히 조화를 이루어낼 만한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눈앞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성급함만 경계한다면 얼마든지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함께 해주신 파장동 주민 여러분, 그리고 수원시, 경기도, 문화재청의 담당책임자 여러분! 머리를 맞대고 함께 방법을 찾아보십시다. ‘이병원 가옥’을 파장동의 자랑거리로 우뚝 세우고, 그와 함께 살기 좋은 우리 동네를 만드는 길을 말입니다.
2007-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