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건 사퇴와 당선지상주의

등록일 : 2007-01-18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10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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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1. 18 - 경기신문 기고문 -


고건 전 총리의 대선 불출마 선언이 정치권에 파장을 몰아오고 있다.

행정의 달인이라는 닉네임으로 불리며 범여권후보로 정치적 자산이 그 누구보다 많았던 그였기에 정치적 상황에 한계를 느껴 대선후보 및 모든 정치적 활동을 중단한다는 그의 불출마선언은 현실정치의 벽이 얼마나 높은 것인가 하는 점을 다시 일깨워 준다.


그의 불출마 선언은 아름다운 퇴장으로 볼 수도 있고, 정치인이 될 수 없는 행정인의 한계라고 폄하될 수도 있을 것이다. 혹자는 이도 저도 아닌 개인적인 성향에 따른 중도하차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고건 전 총리 지지자들 입장에서는 그가 단 한 번도 자신의 정치적 역량을 보여주지 못하고 이렇다 할 도전 없이 후보포기를 선언한데 대해 진한 아쉬움을 느끼리라 보여 진다.


서울시장 재직 시에도 중요하고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본인이 직접 결정하지 않고 위원회를 구성해 결정토록 함으로써 ‘위원회 행정’이라는 달갑지 않은 지적을 받았던 과거의 예를 생각할 때 이번 불출마선언도 그와 맥을 같이 하는 것 같아 보기에 안쓰럽기까지 하다.


고건 전 총리는 불출마 성명서를 통해 “제 활동의 성과가 기대에 크게 못 미친다는 여론의 평가를 겸허하게 받아 들인다” 고 밝혔는데 그의 지지도가 대선 후보군 중 1위에서 절반으로 줄어들며 3위로 밀려나는 동안 어떤 활동을 했는지 국민들에게 인상적인 내용이 없는 상황이다. 오히려 그의 지지자들과 적지 않은 수의 국민들은 이제나 저제나 고건 전 총리가 어떤 정치적 역량을 보여줄 지 기다리고 있었던 형국 아니었던가?


여기에 느닷없이 대선불출마를 선언해 버렸으니 그의 지지자들이 허탈감과 일말의 배신감을 느끼는데 대해 공감이 간다. 또한 “우리 선거 정치사에서 제3의 후보나 선거용 정당설립의 전철을 초래해선 안된다”고 했는데 무슨 뜻인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투표를 통해 지도자를 선출하는 대의 정치는 도전과 설득의 연속이다.

즉,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도전하고 유권자들로 하여금 이에 대한 이해를 돕도록 설득하고 홍보해 지지를 이끌어 내는 것이 현실정치의 요체인 것이다.


그런데 대의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작업 없이 기존 지지율이 반토막 나도록 별다른 활동도 안했던 그가 제3후보 또는 선거용 정당 운운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 느껴진다.

그의 지지도가 지난 1년 사이에 1위에서 3위로 곤두박질 쳤다면 대선까지 남은 11개월 동안 이를 만회할 생각을 해야지 반토막난 지지도를 고착화해 생각하고 그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어찌 대선주자이고 진정한 리더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의 불출마 선언이 아름다운 퇴장이었다면 그 반사이익이 여권으로 돌아가야 하겠지만 현재 여권은 반사이익은 커녕 깊은 혼돈의 나락으로 빠지는 형국이다.


고 전 총리의 중도사퇴로 현재 여권은 대선을 11개월 남겨둔 시점에서 지지율 3%가 넘는 유력후보가 한명도 없는 사상초유의 사태를 맞고 있다. 또한 사실상 그를 중심으로 논의되던 통합신당론은 구심점을 잃었으며 여권이 국민여론몰이용으로 구상하던 오픈프라이머리(100% 완전 국민경선)도 물 건너 간 느낌이다.


앞으로, 각 당의 대선후보 경선과 대선은 더 이상 반목과 비방이 아닌 국민적 축제가 돼야 한다. 자신의 정치적 이상과 실천 가능한 정책에 대해 지지하는 이들을 모으고 세를 확산시켜 나아가는 캠페인 선거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오로지 당선만을 목적으로 후보를 찾고 또한 그를 중심으로 뭉치려는 구태한 정치양태가 오늘 여권의 혼돈을 가져왔다. 또한 여권은 앞으로도 외부인사 영입을 통해 대선후보를 찾는 작업을 계속할 것으로 보여진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정치적 이상은 실종되고 오로지 당선지상주의라는 정당정치의 벽에 가로막혀 절망할 제2, 제3의 고건 전 총리는 또 누가 될 것인가.

고건 전 총리의 중도하차는 여권 스스로 열린우리당과 참여정부에 대해 실패한 정치 실험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자신들의 정치적 이상과 정책의 변화 없이 사람만을 바꿔 정권을 연장하려는 한계가 낳은 결과물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런 시도를 계속한다면 그 시대착오적 발상의 오류는 부메랑이 되어 여권으로 돌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