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30
서진웅 의원 칼럼
지방교육 고사시키는 중앙정치
어제 0시 48분 국회 본회의에서 총액 386조 4,000억원 규모의 새해 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하였다.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사업에 예산이 책정되어 있지만, 경기도의회 교육위원이자 예산결산위원인 필자는 박근혜 정부의 대표적 보육정책인 누리과정에 대해 중앙정부가 얼마나 지원할 것인가를 초미의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다. 그리고 이내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누리과정은 3~5세 영유아를 위한 어린이집과 유치원 취학 비용을 지원해주는 현 정부의 대표적 보육정책이다. 굳이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사항임을 말하지 않더라도,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상황과 노동시장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우리의 보육환경은 출산을 기피할 수 밖에 없는 처지로 내몰리게 되면서 마련된 최소한의 보육정책이며, 모든 국민의 박수를 받을 만한 훌륭한 선진국형 보육정책이다.
그러나 문제는 현 정부나 새누리당이 말로만 치적을 홍보할 뿐, 전년도에 이어 올해 역시 누리과정 지원 예산은 본예산에 0원을 편성하는 엽기적인 태도와 더불어 마치 자신들이 지원하는 것처럼 이중적 잣대로 여론을 호도하는데 있다. 본예산이 0원이니 누군가는 돈을 내야 한다.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지방교육청이 폭탄을 떠안았다. 경기도교육청의 경우 2014년 8,939억원을 지출하였고, 2015년에는 1조 302억원을 지출하였다. 그리고 내년에는 1조 659억을 지출해야 한다. 누리과정 지원 덕분에 경기도교육청은 벌써 빚만 3조 5,000억원에 이르고 있으며, 올해 줘야할 이자만 748억원이다. 중앙정부와 정치권이 자신들의 밥그릇 예산과 선거용 선심성 예산편성으로 인해 누리과정을 나몰라라 하는 사이에 정작 지방교육청을 파산직전으로 내몰고 있는 형국이다. 과연 중앙관료와 중앙정치권 인사들에게 정의와 양심은 있는 것인지 진실로 궁금할 따름이다.
혹자는 금번 예산안에 누리과정 지원 3,000억원이 있지 않습니까? 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속을 열어보면, 전체 누리과정 필요경비 4조원중 이는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더욱이 전년도에는 차라리 5,000억원이라도 지원했었다. 그런데 올해는 작년보다도 거진 반토막낸 예산을 여야 합의로 처리했다고 한다. 참으로 어이없고 허망하다. 더욱 가관인 것은 예산서 어디에도 누리과정 지원비라는 명칭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목적예비비 방식으로 편성하여, 누리과정에 우회 지원해도 괜챦다는 해석을 통해 편법 이용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공식적으로 중앙정부는 여전히 누리과정에 대한 지원비는 0원인 셈이다.
지금 이 시간 자녀를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보내고 있는 학부모들은 불안하기만 하다. 자녀를 맡고 있는 어린이집, 유치원 교사 역시 불안하기는 매 한가지다. 언제 학부모와 교사가 거리로 내몰릴지 모르는 폭풍전야에 가깝다. 1인당 GDP 3만불을 바라본다는 나라의 교육정책 치고는 이렇게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까? 우려스럽다.
경기도의회 교육위원회는 지난달 30일 경기도교육청에 대한 예산심의에서 도교육청이 마련한 누리과정 지원비중 4,929억원을 전액 삭감한 바 있다. 뼈를 깎는 듯한 아픔을 가지고 내린 이 결정은 전체 영유아가 아닌 교육청의 사무에 해당하는 유치원에 대한 누리과정 지원만을 담고 있어, 어린이집에 취학하는 아동과의 형평성을 위해 내린 고육지책이었다.
기본적으로 교육감의 책무는 유치원·초·중·고 학생의 교육·학예에 관한 사무에 국한한다. 현행법상 미취학 아동의 경우 영유아보육법에 의해 지방자치단체장의 사무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리과정 지원에 대한 중앙정부의 무책임한 처사로 인해 2015년의 경우 경기도교육청은 170만명에 달하는 초·중·고 학생들을 위한 학교 운영비로는 9,400억원을 사용한 반면, 35만명의 영유아를 위해서는 1조 302억원을 사용했으니,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다.
누리과정 지원을 위해 경기도교육청은 학교 학생들을 위한 모든 사업의 예산을 축소하였다. 쾌적한 교실을 만들어 갈 학교환경개선사업비는 해마다 1,000억원씩 줄이고 있고, 아이들 전기세, 난방비로 써야할 학교운영비도 일괄해서 5%씩 줄였다. 교사의 질을 높이자고 주장하지만, 교사들의 처우개선비와 연구비도 대폭 삭감하였다. 지방채 발행으로 빚을 조달하는 것도 모자라, 경기도청으로부터 내년에 받을 돈도 땡겨서 썼다. 이렇게 마련한 돈이 전부 누리과정에 지원된 것이다.
지금 이 시간 교육부 홈페이지에는 국가가 누리과정을 책임진다고 장관명의의 안내문이 버젓이 올라와 있다. 그리고 창밖에는 어린이집과 유치원으로 등교를 서두르는 아이들의 발걸음은 한없이 위태로워 보인다. 정부와 여당에 책임 있는 자세를 절실히 촉구하는 이유이다.
2015-1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