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1일 중소기업센터에서 열린 ‘경기도 노인자살·학대 예방을 위한 경기도와 20개의 민간단체 협약식’에 참석한 나는 내면의 깊은 곳에 묻혀 있던 그 기억이 떠올랐다. 1991년 나는 농촌에 살고 있었다. 결혼한 지 10년쯤 되었고, 아이들도 초등학교 1학년 유치원에 다니고 남편 일을 도우랴, 아이들 돌보랴 분주하게 보냈다.
이웃에는 할아버지 한분이 살고 계셨는데 할머니는 암으로 1년간 투병하시다가 돌아가셨다. 할머니가 살아계셨을 때 할아버지는 정성을 다해 할머니를 간호하셨다.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서인지 소일거리가 없으신 할아버지는 우리 집에 자주 들리셨다. 그리고는 나를 딸처럼 생각해도 되겠느냐고 하셨다.
13살에 교통사고로 갑자기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나는 좋다고 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너무 자주 오셨다. 어느 날은 하루에도 서너 번씩, 그것도 두세 시간씩 오셔서 말동무를 해주시기를 원하셨다. 몇 달이 지나자 내 생활에 리듬이 깨지는 것 같아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오시지 말라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그러나 내 불편해 하는 심기를 눈치 채셨는지 오시는 횟수가 줄어들더니 동네 소문이 났다. 할아버지가 읍내 다방 아가씨와 살림을 차렸다는 것이다. 급기야 할아버지의 자녀들이 그해 추석에 와서 할아버지에게 동네 창피하다며, 원망을 퍼붓고 돌아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추석이 지난 이튿날 할아버지는 소주에 농약을 타고 드시고 할머니 무덤에서 76세의 나이에 병고가 아닌 자신의 결단으로 목숨을 끊으셨다.
이 사건은 나에게 얼마나 많은 충격과 죄책감을 주었는지 모른다. 몇 달 동안은 내가 할아버지를 간접 살해한 것 같은 죄책감에 고통 받기도 했다. 조금만 더 관심을 가졌더라면, 그리고 외로움을 달래드리는 따뜻한 말 한마디 더 해드렸다면….
이후 벌써 18년이란 세월이 지났다. 경기도의원이 된 지금 보건복지가족여성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노인문제에 많은 관심을 갖고 조례를 제정하고, 지원하는 남다른 관심을 보이는 것은 아마도 그때의 죄책감을 속죄하는 마음이 내면에 깔려 있을 것이다.
지난 11월 경기도의회 우리 상임위원회에서는 지자체 최초로 ‘경기도 노인자살 예방지원 조례안’을 발의했다. 조례를 제정하게 된 배경에는 우리나라가 OECD국가 중에서 자살률이 제일 높은데 그중 노인 자살률이 33.9%로 심각한 사회 문제임에도 범정부 자살예방대책 등 제도가 미흡한 것에 대해 그동안 경기도가 앞장서서 경기도 노인종합센터를 통해 노인자살 예방을 앞장서온 것에 대해 법적 근거를 마련하여 좀 더 구체적인 지원을 하기 위한 것이다.
앞으로 전문 상담가들이, 협약식에 참석한 많은 단체 회원들이 노인들의 자살을 예방하기 위하여 활동할 것이다. 그리고 기대를 한다. 그러나 내 경험으로 말씀드린다면 우리 모두가 노인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자살, 그리고 스스로의 자살을 예방할 수 있는 것은 교육도 중요하지만, 뭔가 일을 만들어서 의미를 찾는 것이고,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고, 관심을 갖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는 더욱 다양한 계층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정책을 세워 일을 통한 성취감과 보람, 경제성을 갖게 하고, 서로 존중하고, 작고 따뜻한 배려와 격려, 칭찬을 아끼지 않는 사회가 될 때 우울증이 없고, 자살이 없는 신나고 살맛나는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사회를 만들기를 꿈꾸며, 지금 생각나는 사람에게 전화 한 통으로 실천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