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8-31
지방행정체제 개편논의, 앞뒤가 바뀌었다 (경인일보 기고문)
http://www.kyeongin.com/news/articleView.html?idxno=475415#
지방행정체제 개편논의, 앞뒤가 바뀌었다
지방행정체제 개편 논의로 경기도 전역이 시끌시끌하다. 성남시장과 하남시장이 행정구역 통합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하더니 안산시장도 취임초부터 시흥시와의 통합을 구상해 왔다며 시흥시에 통합을 공식 제의했다. 지난달 남양주시는 구리시에 통합을 제의하면서 통합 논의에 본격적 불을 댕기기도 했다.
행정안전부도 주민이 통합을 결정하면 획기적 인센티브를 주겠다며 반색하고 나섰다. 그동안 어떻게 참았나 싶을 정도로 서두르는 모습이다.
이런 통합 논의를 바라보면서 이상한 것은 지방행정체제 개편의 목적과 실제 벌어지는 양상이 따로 간다는데 있다. 행안부는 개편의 목적이 지방자치권의 강화와 지역경쟁력 제고에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그런 방향으로 논의가 이뤄져야 하는데 엉뚱한 통합 논의가 사람들의 눈을 흐리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 것이다. 행정체제 개편 논의에 앞서 어떤 일들이 먼저 이뤄져야 하는지 살펴보자.
먼저 지방자치권을 강화하려면 지방분권에 대한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 중앙정부와 광역시·도, 기초자치단체가 어떤 기능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 사회구성원간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 성남시와 하남시로 대표되는 시·군통합 논의가 다분히 엉뚱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지방분권에 대한 아무런 고민도 없이 일단 합치고 보자는 식으로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앞뒤가 바뀐 것이다. 경기도의회가 선 지방분권, 후 지방행정체제 개편을 외치는 이유이기도 하다.
두 번째는 지역경쟁력이다. 경쟁력을 키우려면 덩치가 커야 한다. 덩치를 키우려면 통합을 해야 한다. 맞는 얘기다. 하지만 어느 정도로 덩치를 키워야 하는지는 경쟁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다르다. 지금 우리의 경쟁 상대는 베이징이나 상하이, 도쿄권이라고 할 수 있다. 인하대 이기우 교수는 "현재 정치권에서 주장하는 통합 광역시 규모는 자치를 하기엔 너무 왜소하고, 생활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너무 큰 어중간한 규모"라고 지적했다.
동감한다. 베이징이나 도쿄와 경쟁하려면 최소 인구 600만에서 1천만 정도의 광역행정체계가 필요하다. 따라서 지역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시·군 통합에 앞서 광역시와 도, 도와 도를 통합하는 문제에 대해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학계 일각에서 주장하는 대전과 충남, 대구와 경북, 광주와 전남 등의 통합 논의가 그것이다.
마지막으로 이해당사자인 지역주민을 제외한 채 중앙정부와 지자체장 중심으로 통합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도 문제다. 우리네 행정구역은 오랜 역사 속에서 나눠졌다. 지도 한 장 놓고 '여기서부터 여기까지'로 정한다고 같은 행정구역이 되는 것은 아니란 뜻이다. 선조들은 지혜롭게도 강과 산, 도로를 기준으로 자연스럽게 지역을 구분했고, 그 속에서 우리들은 수천년이 넘는 세월동안 동질감을 느끼며 살아왔다. 따라서 정부와 지자체장이 합의했으니 그냥 따라오란 식의 방식은 행정체제 개편속도를 저하시킬 뿐 아니라 지역주민간 갈등을 야기할 수 있다.
지방행정체제 개편의 필요성은 누구나 동의한다. 다만 정부에서 강조하는 지방자치권 강화와 지역경쟁력 제고를 위해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와 고민이 없다는 대목이 아쉽다.
2009-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