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과 삶 ( 경인일보 기고문)

등록일 : 2009-05-29 작성자 : 김래언 조회수 : 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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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응순 (경기도의회 윤리특별위원장 )
하느님이 가장 중요한 보물을 다른 데 숨기지 않고 인간의 마음속에 숨겨놨는데, 인간은 본래 무지해서 항상 밖으로만 찾으려 헤매고 다니니 진리를 찾기가 힘들다고 말한다.

어차피 깨달음은 오묘해서 말로 표현할 수 없으니 벙어리가 꿈을 꾸고 나서 꿈 얘기를 할 수 없는 것처럼 스스로만 앎이다.

마음밖에 법이 없으니 어찌 따로 구하러 다닐 것인가? 무위의 우주만물 그대로가 스승이니 스승이 없다면 자연을 스승 삼으면 된다.

세상과 내 몸뚱이는 한 몸이니(동체대비) 바람과 파도가 바로 '나'인 것이다.

여여(如如)한 자연의 섭리가 우주만물의 이치와 한가지이니 내 마음을 거기에 맞추면 된다. 한사코 붙잡겠다고 숨가쁘게 쫓아온 것들, 그 모두가 그림자였음을 알게 된다.

우연히 왔다가 필연히 가는 것이 인생이니 영원한 삶과 소유가 괴로움의 근본이다. 비우고 버리는 마음속엔 어디에도 걸리지 않는 절대자유와 평화인 해탈이 자리잡고 있다. 아무리 영웅호걸도 황천객 면치 못하고 무덤에 간다. 나의 몸은 들풀의 이슬이요 바람 앞에 등불이다. 이 우주에서 관련이 없는 존재는 단 하나도 없다. 그러므로 화엄의 세계에서는 하나의 티끌 속에 전 우주가 담겨 있다고 말한다.

죽음이란 무엇일까? 하루살이처럼 너무 짧아서 살아있다고 할 수 없으니 산거나 죽은 거나 마찬가지다. 지·수·화·풍으로 만들어진 '나'란 존재가 곧 온 자리로 다시 돌아갈 텐데 내가 없다고(無我) 생각한다면 삶의 형상이 바뀐 죽음을 두려워 할 이유가 없다.

어차피 전생과 후생이라는 윤회의 그물에 갇혀있는 물고기가 아직도 물속이라고 온갖 욕심부려봤자 곧 그물은 걷어 올려질 것이다.

매미를 노리는 사마귀는 뒤에서 자기를 노리는 황작(黃雀)이 있다는 것을 모른다. 즉, 눈앞의 욕심에 눈이 어두워 장차 닥쳐올 죽음을 모르고 사는 것이 우리 인간이다.

세상 사람들은 세속적 욕심에 빠져 불타고 있는 집에서 뛰쳐나올 생각은 안하고 죽음이 다가오는데 돈만 세고 있다. 부처의 얼굴도, 미륵의 얼굴도 우리의 얼굴과 똑같이 눈은 가로로 째져있고 코는 세로로 붙어있다. 이처럼 우리마음 속에는 본래부터 온전한 깨달음이 이미 들어있다. 우리는 이것을 이해하고 찾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내 집이 본래 삼라만상(森羅萬象)과 한 뿌리였음을 알고 나니 모든 궁금증이 실타래처럼 한꺼번에 없어지네.

여전히 우주만물은 겉모습을 바꿔가며 말없는 법문을 이어가고 진리는 이 허공 속에 남김없이 여여히 드러나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