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는 대한민국이 갖추어야 할 핵심 기술인가?

등록일 : 2007-10-15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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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 10. 14(일)  - 기호일보(신보영의 세상엿보기) -

 한글날이 있는 10월, 사람들은 부쩍 우리말과 글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다. 세계에서 가장 발달된 언어라는 분석과 아름다운 우리말을 지키자는 다짐이 신문지상과 각종 언론매체의 주요 주제로 등장하게 되는 시기도 바로 이때다. 그러나 과연 실생활은 어떠한가? 말의 현장에서 그리고 글의 현장에서 우리말 학대현상은 이미 도를 넘어 자행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익숙해진 인터넷 언어와 외래어의 무분별한 사용은 이와 같은 사회적 현상을 가속화시키고 있으며 현실적인 대안과 대책이 없이는 그 심각한 언어적 엇나감을 바로잡을 수 없는 상태에 도달해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 원인이고 해결책이란 말인가?

 한국의 교육열은 세계인이 인정하는 대단한 국가적 자산이다. 경제적 파산상태 아니 경제라는 것 자체가 없었던 시절, 한국인은 교육을 통해 국가경제를 재건하고 오늘의 경제대국을 건설했다. 끊임없이 기술을 배우고 해외의 선진적인 지식을 흡수하면서 한국의 경쟁력은 한발한발 선행주자들을 추격하기 시작했고 현재에는 선진국의 궤도에 진입해있다. 이 같은 업적은 인적자원의 힘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국민모두의 승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경제발전기의 성장견인차 역할의 핵심이었던 교육열은 역설적으로 경제성장 이후 잘못된 방향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다양한 학문적 발전과 실용기술적 측면에 대한 관심보다는 ‘영어’라는 언어적 측면에 관심이 집중되어있기 때문이다.

 국제적인 교류가 증대되고 전지구적인 경제공동체의 실현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당연하게 국제어인 영어에 대한 관심과 노력은 필연적으로 요구되고 있다. 그러나 너나없이 영어에만 열을 올리고 있는 작금의 교육풍토는 그 누가 보더라도 이상현상임에 분명하다. 국제적 감감이란 비단 영어를 잘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학문의 측면에서는 우선 과학적 방법론과 그 연구성과 그리고 이를 통해 얻어진 성찰의 깊이가 비로소 국제적 언어를 통해 표현될 때만이 의미가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기술 또한 세계적 수준의 압도하는 발전과 혁신을 거치고 그 결과를 소개할 때만이 국제적인 것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즉, 영어는 우리의 지적재산과 기술력 그리고 상품을 선전하는 일종의 기술이지 결코 교육과 학문의 일차적인 목표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구한말 역동의 세계질서를 제대로 가름하지 못하고 국권상실이라는 비통한 역사적 경험을 겪었던 한민족에게 세계화와 전지구화는 능동적으로 수용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되고 있다. 경제적 측면에서는, 전지구적으로 시장경제의 파고가 확산되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는 신자유주의라는 논리로 국가체제를 정비하고 FTA 등 실질적인 대안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또한 안보적으로는 다자주의적 안보체계의 성립과 한반도의 비핵화를 통한 평화구축을 위해 6자회담에 능동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실질적으로 상당한 결과를 얻어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국제질서에 대한 능동적 대응이 과연 영어라는 언어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인지는 상당한 의문이 든다. 물론 언어적으로 원활한 의사소통은 어떤 대화에서건 필수적인 요소일 것이다. 상품하나를 팔 때, 어려운 국가대사를 의논할 때, 하물며 해외여행을 가서도 언어적 장벽에 좌절한다면 의도한 성과를 100% 달성하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지금까지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영어공용화의 문제도 바로 이와 같은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영어를 배우면서 영미문화권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가능하고 세계적인 선진국의 트랜드를 읽어낼 수 있으며 그것이 국가경쟁력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논리는 어찌 보면 명쾌하고 모순이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이 바로 우리의 정체성을 바로 알고 견실한 국가와 민족의 정체성 위에 나름의 미래전략을 구축하는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경제개혁이라는 미명하에 이루어진 많은 제도적 변화가 과연 우리 나름의 사회적·경제적 환경과 일치하는 것이었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또한 선진국 따라잡기라는 맹목적인 목표와 무분별한 제도적 수용은 오히려 사회적으로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우리의 중심을 세우는 것이다.

 조선시대 신유학이 본고장인 중국의 그것을 뛰어넘고, 일본에서는 학문의 정수로 칭송받을 수 있었던 데에는 한국만의 고유한 발전에 그 이유가 있다. 또한 한국의 경제발전은 시장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에 기반한다라기보다는 경제정책과 사회적 환경을 고려한 나름의 발전전략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영어는 국제화의 수단으로 분명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기술적인 것이지 궁극적인 목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국가와 개인의 발전, 그리고 삶의 질의 질적향상을 위한 미래지향적인 발전전략의 핵심에는 무엇보다 우리의 정체성이 자리잡아야 하는 것이다. 그럴 때만이 추격의 위치에서 선도의 위치로 한민족의 위상이 국제사회에서 자리매김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