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그들을 거짓말하게 했는가?

등록일 : 2007-08-20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8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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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8. 19(일)  - 기호일보 기고문 - 

우리나라 국민들은 어지러운 2007년의 여름을 보내고 있다. 동국대 신정아 교수의 학력위조부터 단국대 김옥랑 교수, 건축 디자이너 이창하, 연극배우 윤석화, 영화배우 장미희까지 국민들의 사랑을 받아왔던 유명 인사들의 거짓말이 백일천하에 드러나면서 연일 신문지면과 방송전파를 소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학력위조 의혹들은 학계뿐만 아니라 문화예술계, 연예계, 방송계 등을 불문하고 사회전체를 불신의 분위기로 몰아가고 있다. 소위 말하는 명문대학을 졸업했거나 해외에서 학위를 받고 온 사람들은 일단 의심해봐야 한다는 분위기는 불특정 다수에 대한 불신의 분위기를 조장하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사회의 분위기가 이렇다보니 이제는 많은 사회적 유명인들이 자신의 허물을 벗겠다는 은유적 표현으로 고백을 하는 경우까지 나타나고 있다.

 신정아 교수 학력위조 사건으로부터 시작된 각계의 학력검증 바람의 후폭풍은 이처럼 사회 분위기를 어수선하게 만들었다. 이 같은 학력위조의혹 중심에 서 있는 당사자들의 반응은 몇 가지로 나뉜다. 첫째, 끝까지 잡아떼는 입장과 둘째, 어느 정도는 사실이지만 잘못했으니 용서해달라는 입장, 그리고 작위가 아니라 부작위를 통한 것이기 때문에 억울하다는 입장 등으로 나뉜다. 그러면서 자신보다는 자신의 학력을 허위로 포장했던 신문기자, 방송국 PD, 출판사 등에게로 비난의 화살을 돌리려는 노력까지 한다. 참으로 황당한 대처방식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사람들이 학력을 속이면서까지 자신을 포장해 왔던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아직까지도 한국사회는 대학간판을 중요시하는 학력위주의 사회를 못 벗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열정과 실전에서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한들 번듯한 대학 졸업장이 없으면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없었기에 그들은 독이 든 사과를 선택했던 것이다. 더불어 명문대학 출신이라면 그 사람의 속을 알기도 전에 사뭇 다른 눈으로 바라보는 우리사회의 고질병도 이 사람들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데 일조했음도 분명하다.

 최근 대학입시 자녀를 둔 주부의 일상을 그린 드라마가 부모들의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대학입시가 우리사회의 뜨거운 감자임을 알 수 있는 현상이다. 대한민국에서 정규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꿈꿔보았을 것이 명문대학으로의 진학이다. 그러한 꿈은 단지 대학간판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을 떠나서 대학간판이 주는 여러 가지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우선 대기업 채용에서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고, 채용이 된 뒤에도 대졸학력이 고졸학력보다 보다 나은 대우를 받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어느 측면에서는 대한민국사회가 조선시대 계급이었던 양반, 중인, 상민, 천민을 대체해 중졸, 고졸, 대졸, 대학원졸이라는 또 하나의 학력위주의 新계급의식을 형성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대한민국의 고질병인 학벌중심의 사회는 누가 피해자이고 누가 가해자인지 분명하지 않다. 모두가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이기 때문이다. 능력이나 실력보다 학벌로만 평가받는 것이 타당하지 않고 잘못된 것임을 인식하면서도 자신은 혹은 자신의 자녀들은 남들에게 부끄럽지 않는 명문대학에 진학시키고자 하기 때문에, 사회를 병들게 하는 학벌위주 가치관의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학력위조의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사람들은 그 어떤 비난을 받아도 마땅하다. 그리고 국민들을 기만한 죄로 진심으로 사과해야 하며, 사안에 따라서는 법적인 틀 안에서 제재를 받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두 번 다시는 이러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학위를 검증할 수 있는 구조적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 이번 학력위조 사건도 시스템이 걸러낸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입소문과 정보의 바다라는 인터넷이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또한, 학력위주의 사고를 하는 사람들은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우리사회는 아직도 고질병의 폐해로부터 벗어나고 있지 못하고 있지만, 한편으로 희망적인 것은 가수 서태지나 영화감독 임권택처럼 대학이라는 간판 없이도 보란 듯이 성공할 수 있는 씨앗이 싹트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