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6-08
맹모 삼천지교/맹부 십년지인
2007. 6. 11 (월) - 기호일보 기고문 -
한국전쟁이란 민족상잔의 폐허 위에서 한국인은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대한민국을 세계 속의 경제대국으로 성장시켰다. 부존자원이 없는 나라, 미국의 원조로 근근하게 연명하는 나라라는 세계 극빈국에서 당당한 OCED 회원국으로 선진국 대열에 올라선 대한민국. 두 주먹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던 우리가 무엇으로 일어났는가? 그것은 바로 국가성장의 경로를 견인해온 우수한 ‘사람’이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던 시절, 한국인은 교육을 믿었다. “배워야 한다”라는 정서는 모든 국민의 공통된 인식이었다. 발전국가시기, 한국의 전국민적 교육열과 비교해보면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는 그야말로 초기적인 수준의 행위라 하겠다.
이제 한국인의 교육열은 ‘맹모삼천지교’를 벗어나 ‘맹부십년지인(孟父十年之忍)’의 과열단계에 이르렀다. 이 말은 교육을 위해 해외로 자녀를 보낸 아버지들을 빗대어 내가 만든 것이다. 더 좋은 교육환경에서 자녀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유학 보낸 아버지들은 10년 정도 각고의 세월과 외로움을 참아내야 한다. 이 현상은 부모들의 교육에 대한 헌신과 노력이 색다른 형태로 대물림 된 것이다. 이런 이유로 작금의 조기유학현상을 비정상적인 것으로만 폄하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조기유학과 기러기 아버지의 문제는 단지 교육열의 부수적 현상으로 해석하기에는 그 사회적 영향력이 너무나 크다는 점에 문제가 있다.
한국의 유학수지 적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중앙대 장치순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2000년대 초반까지 유학·연수를 위한 비용으로 발생한 유학수지 적자는 연간 10억 달러 수준이었지만 이후 꾸준하게 증가, 2004년 24억9천400만, 2005년 33억8천100만, 그리고 2006년에는 10월까지의 적자규모가 36억6천900만 달러에 이르고 있다. 수출로 성장한 한국경제가 유독 교육의 측면에서는 낮은 비교우위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세계화·전지구화라는 담론이 주도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국제적 수준의 인재 육성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러나 그 방법이 잘못되었다. 해외연수와 유학이 세계화된 교육이라고 말 할 수 없다. 그들이 받는 교육의 질적 수준과 내용, 그리고 학습성취도와 활용가능성을 다각적으로 고려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제는 나가는 세계화보다 ‘들어오는 국제화’, ‘스며드는 세계화’가 강조되어야 한다. 한국적 토양위에서 한국인의 특수성을 세계화 시킬 수 있는 교육패러다임이 구축되어야 한다.
해외에 나가있는 또는 가기를 희망하는 교육수요자를 다시 한국교육시장으로 유턴시키기 위해서는 한국대학의 국제화와 경쟁력 강화가 가장 시급한 과제다. 조기유학으로 인한 가족 간의 이산가족화는 주로 초·중·고등학교과정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부모들의 조기유학선택의 제일 목적은 바로 대학 진학이다. 한국의 경직된 대학서열화는 과열된 입시경쟁을 만들어내고, 학생들은 ‘사당오락’이라는 각고의 노력이 없이는 소위 말하는 명문대에 진학할 수 없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주입식 교육과 입시지옥을 모두 체험한 부모들이 해외의 선진 교육시스템을 동경하고 자녀들을 내보내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한국의 대학교육도 변화하고 있다. 다양한 재원의 선별방식과 그들의 개성을 살리기 위한 교육환경의 구축이 국제화된 교육프로그램과 병행되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로서, 연세대학교의 경우 송도캠퍼스 사업의 추진을 통해 국제규격(?)에 맞는 맞춤형 인재를 육성하기 위한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연세대는 송도캠퍼스 내에 국제화된 아카데믹 빌리지(Academic Village) 조성을 통해 다국적 언어 환경을 구축하고 국내외 우수학자가 공동으로 주관하는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함으로써 유학수요를 국내로 유턴시킨다는 복안을 가지고 있다.
대학의 변화와 더불어 초·중·고등교육의 주체인 정부도 변화해야 한다. 현 정부는 무조건적인 삼불정책에 대한 집착만으로 한국의 교육환경이 변화할 것이라는 환상을 버려야 한다. 정부는 국제적 교육환경의 변화와 학부모의 교육수요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구체적인 대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할 의무가 있다. 교육서비스의 제공자로서 교육수요자인 국민의 선호를 파악하고 그에 부합하는 교육환경을 제공한다면 해외시장에 대한 교육수요는 다시 국내로 향하게 될 것이다. 정부의 선진화된 교육환경의 육성의지와 경쟁력 있는 대학교육의 제도화가 이루어질 때만이 기러기 아버지들의 기다림이 끝나는 동시에 한국교육의 선진화와 비교우위의 확보가 가능할 것이다.
2007-0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