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4-23
병들어가는 라이벌세상 (경인일보 기고문)
2007. 4. 24 (화) - 경인일보 기고문 -
우리는 늘 서로가 경쟁하는 라이벌 시대에 살고 있다. 아니 오늘 현재만이 아니라 옛날부터 우리는 그렇게 살아왔다. 라이벌이란 같은 목적을 가졌거나 같은 분야에 일하면서 앞서려고 서로 겨루는 적수를 말한다.
라이벌의 어원은 River(강)에서 유래되었다. 강을 사이에 둔 부족민끼리 강물을 전답에 물대고, 식용수로 써야하니 '강물 쟁탈전을 벌이는 관계'라는 의미라고 한다. 그러나 가뭄이 지나면 강물이 바닥날까봐 서로 도와가며 살아가야 하는 공동운명체이기도 한 관계를 의미한다. 강물을 사이에 두고 서로 싸우고 또 맞대고 물을 사용하기 때문에 때론 적으로 때론 협력자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원숭이와 개처럼 앙숙관계로 또는 악어와 악어새처럼 공생관계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 라이벌 관계는 후자보다는 전자 즉, 협력적 관계라기보다는 서로가 죽느냐 죽이느냐 하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운명을 건 한판승부를 벌이는 관계를 떠올리게 된다.
역사 속에서 라이벌 관계는 수없이 많이 존재해 왔다. 이때의 라이벌은 적으로서 또는 경쟁자로서 존재한다. 라이벌 관계에서 패자는 죽음으로 내몰리는 경우도 있듯이 승패의 명암은 극명하게 갈린다.
삼국사기를 집필한 김부식은 정지상에게 글쓰는 라이벌 의식을 느꼈다고 한다. 이러한 연유에서인지 단재 신채호가 말한 '조선 1천년사에서 가장 큰 사건'인 묘청의 난을 진압한 김부식은 학문적으로 라이벌 의식을 느꼈던 정지상을 제일 먼저 제거해 버렸다. 레닌의 총애를 받던 트로츠키와 스탈린, 레닌의 후계자를 꿈꿨던 두 사람은 경쟁구도속에서 라이벌 관계를 형성했다. 모든면에서 트로츠키를 능가하지는 못했으나 권력조직을 누구보다도 잘 간파한 스탈린은 책략을 바탕으로 권력을 장악, 해외로 도피한 크로츠키를 자객까지 보내 송곳으로 살해해 버렸다. 스탈린이 크로츠키를 살해한 의도는 시기, 질투를 넘어 증오에 가까울 정도로 트로츠키의 펜을 두려워 했기 때문이었다.
중국역사상 최대의 라이벌이었던 항우와 유방. 항우는 유방과 70번의 싸움에서 모두 승리하였다. 그러나 유방과의 마지막 한판 승부의 패배로 인해 애마인 오추마를 버리고 스스로의 삶을 처참히 마감해야 했다. 이처럼 언제나 승자는 한 명이기에 라이벌 관계는 늘 긴장과 스릴, 경쟁이 이어지고 자칫 목숨을 건 건곤일척의 대결이 이루어져 왔다.
역사 속 라이벌은 사활을 건 경쟁을 통해 승자에게는 영광을, 패자는 죽음이라는 불명예를 감수하게 한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21세기는 페어플레이의 무한경쟁시대이다. 라이벌도 시대정신에 맞게 경쟁자로서 협력적 파트너로 서로 발전하는 길로 가야 한다.
건전한 라이벌은 양자간 아름다운 발전을 동반하지만 그렇지 않은 관계는 서로 엄청난 시간·경제적 낭비와 희생을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2007-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