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학교의 밥상머리 교육 -경인일보

등록일 : 2004-01-08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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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필자는 일본 요코하마시립대 객원연구원으로 한일간 교육자치제도 연구를 위해 자주 일본을 오가고 있다.

일본에 있는 동안 틈틈이 현지의 학교들을 방문하기도 했는데 그중 요코하마시립 하케이(八景)초등학교에서 학생들과 함께 한 점심시간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평소 도의회 문교위원으로서 학교급식에 관심을 가지고 지역의 학교들을 방문하기 때문에 일본에서 우리 학교급식의 타산지석(他山之石)을 찾아보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차 마침 그 학교 학부형인 유학생의 안내로 필자의 급식 체험이 이뤄지게 됐다.

당시 필자가 수업을 참관한 반은 3학년이었는데, 오전수업이 끝나고 마침내 점심시간이 됐다. 급식 당번들이 흰 가운을 입고 1층의 조리실에서 자기 반에 배당된 음식을 타서 3층의 교실까지 날라와서 배식을 하는 과정은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였다.

그런데 날이 쌀쌀해 배식이 진행되는 동안 국과 음식이 식어가고 있는데도, 배식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어느 누구도 수저를 들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배식이 종료되자 한 아이가 앞으로 나와서 영양사가 적어준 글을 낭독하였는데, 그 내용은 쌀은 어느 지역에서 생산되었고 나물은 어느 지역에서 어떻게 재배되고 영양가는 어떻다는 등 식단에 대한 일종의 소개시간이었다. 그리고 모두 박수를 세번 치고 힘차게 “감사히 먹겠습니다”를 외친 다음에야 식사가 시작되었다. 음식이라 해봤자 쌀밥에 장국, 생선반토막, 나물무침, 흰우유가 전부였지만 그 음식이 식탁에 오르게 되기까지 들어간 여러 사람들의 수고와 국토의 고마움을 환기시키면서 식사에 대한 감사의 이유를 찾게 하는 것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이런식으로 하면 학교식단에서 국적없는 식품들이 오르는 일이 자제되는 효과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주로 각 식단별로 칼로리 분석에 비중을 두고 식단표를 일정 기간별로 공개하는 데 그치는 우리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 거기서 필자는 손님으로서 학생들의 특별대우를 받았는데, 한 아이의 안내를 받아 자리에 앉자 다른 아이가 식판을 날라다 주었고, 식사 중에도 아이들은 끊임없이 필자를 살피며 뭔가 불편함은 없는지, 도움을 주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리고 식판을 비우기가 무섭게 경쟁적으로 더 먹기를 권했고 그런 아이들의 강권에 못이겨 “밥이 남았다면 더 달라”고 했더니, 옆에 있던 학생 두명이 배식을 받아 주었는데, 자신들이 떠온 밥의 양에 혹시 필자가 부담을 느끼지 않을까 생각해서 “남겨도 됩니다”라는 염려의 말을 빼놓지 않았다. 초등학교 저학년생이 오히려 자신들의 친절이 상대방에게 폐가 될 수도 있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고 있다는 것에 대해 필자는 전율에 가까운 느낌을 받았다.

한 학교의 경험을 지나치게 일반화시키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식사시간을 단순히 밥 먹고 쉬는 시간이 아닌,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과 룰을 습득하는 교육의 연장선으로 삼고 있는 일본의 급식 현장은 분명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다.

배식이 끝나야 식사가 시작되고, 마지막 사람의 식사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모든 학생들의 식사가 끝나면 “잘 먹었습니다”를 외치고 식사를 마치는 식전·식후 의례를 통해 공동체 교육의 살아있는 효과를 달성하고 있었다.

혹자는 어린아이들의 식사시간까지 규제하고 간섭하는 것은 지나치지 않냐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릴 때에는 지식의 습득이나 경쟁보다 더불어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초적 소양을 먼저 배워야 하지 않을까. 우리말에도 ‘밥상머리 교육’이라는 것이 있다. 어릴 때 식사시간을 통하여 올바른 예절과 자기 절제를 키워주는 것이 필요하며, 그런 점에서 필자가 본 일본의 초등학교는 그 기능을 다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