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담보 신용대출

등록일 : 2003-10-16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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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재신임을 묻겠다고 한다.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사람들마다 나름의 해석을 내놓고 있다. 노 대통령의 의도가 무엇이었든 간에 이는 심사숙고하여 결정해야 할 일이다. 서민들이 느끼는 경제는 이미 바닥을 친지가 오래이고, 태풍 매미의 피해 복구도 아직 요원한 상태지만 재신임 논의가 길어질수록 이러한 민생현안을 풀어가기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이제는 한국사회가 나아가야할 길을 바로 잡아야 할 때이다.

노 대통령은 국정운영의 기조를 참여에 두었다. 몇몇 관료와 정치엘리트에 의해 이루어지는 밀실의 하향적인 권력구조를 과감하게 탈피하고, 국민의 참여를 통한 여론의 수렴과 시스템에 의한 정치를 하겠다는 것이다. 참 좋은 말이고 다원적인 민주사회에 적합한 정부형태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국정행위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는 노 대통령 역시 과거의 권위주의를 아직 탈피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과정이란 끊임없는 협상의 과정이자 타협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노 대통령이 그렇게 강조하는 참여의 정치란 협상의 정치이지, 검증되지 않은 여론을 등에 없고 국민이라는 이름을 마음대로 참칭하며 협상을 거부하는 일인의 정치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에 더하여 아쉬운 점은 노무현 정부의 출범부터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자기 권위를 스스로 훼손시켜 왔다는 것이다.

참여라는 이름을 통하여 노무현 정부는 내각의 수뇌부를 국민추천이라는 새로운 방식을 통하여 선출했다. 이것은 무척 신선한 정치형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신선하기는 하지만 동시에 자기권위를 침해하는 행위였다. 국민의 참여로 자기의 참모진을 뽑는다면 정부의 색채는 하나의 컬러를 갖기 어려울 것이다. 또한 그러한 방식을 정당하게 인정받기 위해서는 선거라는 공식적인 방식을 이용해야 한다. 이러한 검증과정도 거치지 않은 사람들을 국민의 뜻으로 선출했다라고 말하는 것은 그야말로 민의에 대한 참칭행위이며 위선행위이다.

또한 뒤이어 나타났던 일련의 정치파동적 사건들의 해결과정은 협상의 과정을 무시한 일인적인 정치행태의 발현이었다. 국회와 정당은 정치권이라는 하나의 집단으로 표현되기 이전에 자기와는 코드가 다를지라도 또 다른 성향의 국민들에 의해 선출되고 그들의 여론을 대표하는 곳이라는 것을 명심해야한다. 이러한 다른 의견을 가진 사회의 구성원들과의 협상의 노력은 경시하고 국민의 뜻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자기중심적인 판단이 아닐 수 없다.

노 대통령은 청문회의 스타였다. 그는 이전 대통령들의 국법질서 유린을 강하게 질타함으로써 국민의 신망을 한 몸에 받았다. 그랬던 노 대통령이 이제는 자기의 정치적인 어려움을 타파하기 위해서 과거 유신정권이 실시했던 국민의 재신임이란 방식을 채택했다. 참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아직 한국사회에 희망은 있다. 경제위기의 고통을 감내한 국민의 힘은 갈등의 사회를 극복하고 다시 한번 하나가 될 수 있는 정치적인 힘을 갖고 있다. 그러나 공적자금을 국민들로부터 가져간 경제위기 때처럼 이번에도 국민을 담보로 정치신용을 대출받아서는 안된다. 노 대통령은 코드가 다른 사람들과도 논의하고 협상하는 방법을 배워야한다. 국민의 정치신뢰는 한번의 투표를 통하여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계속적인 노력과 작은 신뢰의 누적이 정부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열쇠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국민담보 신용대출의 채무를 상환하지 못할 때 찾아올 국가 공동체의 모라토리엄을 현 정부가 어떻게 감당할지 참으로 걱정된다. 뛰기보다는 한걸음씩 천천히 내딛는 것이 목표를 성취하는 길임을 왜 모르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