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2-27
형!
언제부턴가 적지 않은 나이를 느끼기 시작했는데 새해가 되니 진짜 실감나네요. 20년 전에 형이 주인장이었던 통기타 카페에서 지금의 아내랑 데이트하던 생각이 떠오르니 말입니다. 고교시절 국어를 가르쳐주신 은사님께서 '청춘은 미래에 살고 노년은 추억에 산다'고 말씀하실 때, 그런가보다 했는데 이제 더 이상 청춘이라고 부르짖기는 어려운 나이가 되었나 봅니다.
생생히 기억납니다. 수원 장안문에서부터 열두 시간을 걸어서 그 엄청난 인파 속에 보신각 새해 종소리를 들었던 그 때가 지금처럼 생생합니다. 그 새벽에 형이 이야기했던 세상이 지금쯤은 우리 앞에 펼쳐져 있으면 얼마나 기쁠까? 사회의 파수꾼인 그 멋진 기자생활을 접으며 정치에 뛰어들 때, '우리 아이들이 잘 사는 세상을 위하여'라고 내걸었던 형의 다짐이 지금쯤은 내 아이들 앞에 이루어졌으면 얼마나 좋을까? 일 년 열두 달 삽질에 곡괭이질을 해대지만 우리의 금맥은 언제나 터질는지?
며칠 전에 형이 책을 한 권 내셨더군요. '꿈은 좌절마저 삼킨다'란 제목이 예술이었습니다. 편안하게 참으로 오랜 만에 형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힘든 고비마다 움켜쥐고 살았던 형의 꿈이 무엇인지 제가 조금은 알지요. 시장 통에서 선거유세를 하다가 좌판 할머니를 바라보며 말을 잇지 못했던 형의 느꺼움을 조금은 알지요. 포장마차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투덜거렸던 형의 아픔이 지금도 절절하거든요. 그 꿈이 처음처럼 마지막까지 그대로이길 바라고, 그럴 것을 저는 믿습니다. 부족하지만 저도 그 꿈에 끼워주시면 고맙고요.
무자년 새해를 광교산에서 맞았지요? 뺨 시린 새벽 캄캄한 어둠 속, 익숙한 길을 걸었었지요. 잔등에 밴 땀줄기가 열어젖힌 파카 안에서 모락모락 김으로 올라올 때, 티끌도 묻지 않은 우리의 山河는 우리 가슴속을 벌겋게 물들였습니다. 눈부신 햇살위로 시뻘건 불덩이가 솟아오를 때, 형은 마치 굳어버린 동상처럼 그렇게 서있었습니다. 언제나 정겨운 우리의 광교산은 늘처럼 정겨운 모습으로 함께 호흡하고 있었고요.
오래 전에 은사님께서 형의 아호를 '초인(招부를초 寅새벽인)'으로 지어주시고는 절더러 "너는 '가인(稼심을가 寅새벽인)'으로 하면 되겠다"고 하셨는데 그 땐 그 뜻을 잘 새기지 못했더랬지요. 형은 'superman' 저는 '아름다운 사람'으로 들었는데, 새벽을 부르고 새벽을 심는 의미인 걸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새해에는 광교산의 새벽처럼 눈부신 햇살이 우리 세상에 가득하길 소원합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노래하는 형의 소원이 우리 수원에, 이 나라에 희망의 종소리로 울려 퍼지길 바랍니다. 우리 아이들이 잘 사는 세상을 꿈꾸면서 말입니다.
형! 세월이 더 많이 흘러서 형 이야기가 더 많이 쌓였을 때, 그래서 우리 아이들한테 아빠의 옛날이야기를 들려줄 때 쯤, 그 때는 좌절보다는 도전을, 꿈보다는 행복함을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해요. 미명 속에서 우리가 열었던 새벽을 말이지요. 물론 지금은 마냥 삽질에 곡괭이질을 해야겠지요. 시골 촌놈에서 막노동, 포장마차 주인, 라이브카페 주인, 사회부기자를 거쳐서 험난하고 불꽃같은 정치인으로 살아온 형의 진솔한 이야기를 다시 한 번 찬찬히 읽어볼게요.
형! 파이팅!
2008-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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