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의 영웅을 만들자

등록일 : 2007-10-31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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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10. 28(일)  - 기호일보 기고문 -

 요즘 안방극장에 사극열풍(史劇烈風)의 기세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왕과 나, 사육신, 이산, 태왕사신기, 대조영 등의 인기 사극 드라마가 일주일 내내 우리 가정의 저녁시간을 점령하고 있다고 해도 무리가 아닐 정도다. 묘하게도 이 드라마들이 다루는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훌륭한 인품, 뛰어난 지도력, 굳은 의지 등을 가진 영웅적인 인물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2007년 사극열풍이 불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은 대통령 선거가 있었던 1997년의 용의 눈물, 2002년의 태조 왕건 등의 국민적 인기를 언급하면서 연말에 실시될 17대 대통령 선거와의 관련성을 지적하고 있다. 많은 사랑을 받았던 허준, 대장금과 같은 비정치적인 인물을 조명한 드라마가 아닌 대조영, 광개토대왕처럼 한 국가와 민족을 호령했던 왕들의 생활을 극화한 것이기에 이러한 지적은 타당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단지 큰 선거가 다가왔기 때문에 반짝 인기가 있는 것이라고 치부해버릴 수는 없다. 대통령 선거와의 관련성으로 인한 인기를 넘어서는 무엇인가가 분명히 있다. 그것은 우리 국민들이 가슴 속에 품고 사는 현대의 영웅이 없기 때문은 아닐까하고 조심스레 생각한다. 국민들은 드라마의 영웅을 통해 이 시대 영웅의 빈자리를 채우거나 대리만족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자라나는 어린 아이들, 직장 생활하는 어른들에게 누구를 존경하느냐고 물었을 때 돌아오는 답변의 대부분이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 정약용 선생, 김구 선생 등으로 한정된다. 김구 선생을 제외하고는 시기적으로 한참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인물들이다. 즉, 이 시대의 영웅은 없다고 국민들 스스로가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왜 그런 것일까? 이해하기 쉽게 국민들의 지지와 사랑으로 최고 지도자 자리에 오른 대통령을 예로 들어보자.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하야를 선언하거나 독재를 하다 유명을 달리하고, 쿠데타를 일으키고 많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아 간 죄로 징역을 살고, 아들들이 권력형 비리 사건에 연루되는 등의 일이 바로 대한민국의 지도자들의 발자취다. 이 때문에 국민들이 이 시대의 지도자를 존경하거나 영웅시 여기는 사례가 드문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 시대의 영웅이 없는 것은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너무 가혹한 잣대와 조바심을 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없지 않다. 난세(亂世)에 영웅이 난다는 말이 있듯이 1990년대 말 우리는 IMF로부터 구제 금융을 받을 정도로 경제가 악화됐었다. 건국 이후 처음 겪는 경제적 압박 속에 우리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 그리고 웃음을 준 사람들이 있었다. 야구선수 박찬호와 골프선수 박세리다. 많은 국민들이 새벽잠을 설쳐가며 TV앞에 앉아 이들의 경기를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들은 멋진 승리와 짜릿한 감동을 선사했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고통 받는 국민들에게 두 명의 운동선수가 대한민국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의지를 심어주었고, 이들은 온 국민의 지지와 사랑을 받는 스포츠 영웅으로서 맹활약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은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아픈 것은 참지 못한다거나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우스갯소리로 하는 것을 곧잘 목격할 수 있다. 이처럼 좋지 못한 습성 때문에 우리는 각 분야를 대표하는 우리 시대의 영웅을 스스로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염려스럽다. 현대사회는 나라를 세우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영토를 확장하는 거대 영웅은 절대적으로 나타나기 어렵다. 우리 시대에서는 각자의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나고 국가의 이름을 빛낼 수 있는 작은 영웅들이 많이 나타나야 한다. 한류(韓流)로 대한민국의 위상을 제고하는 연예인들과 박찬호, 박세리와 같이 주로 해외에서 활약을 하는 운동선수들, UN 사무총장으로 당선된 반기문과 같은 사람 모두가 우리 시대의 영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앞서도 말했듯 각 분야를 대표할 수 있는 사람들은 많다. 그 만큼 영웅이 될 수 있는 사람도 많다는 얘기도 된다. 그러나 우리 시대의 영웅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국민들이 지지와 성원을 보내면서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그러한 행동 하나하나가 우리의 배를 아프게 하는 것이 아니라 배를 부르게 해주는 일임을 깨달아야 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옆에 있는 우리의 동료나 친구들을 다시 한 번 주의 깊게 관찰해 보자. 우리가 마음먹기에 따라서 그들도 얼마든지 영웅이 될 수 있는 시대가 왔다. 모든 국민이 대한민국의 영웅이 되는 그날이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