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이념과 시스템의 사회 - 중부일보
등록일 : 2004-05-11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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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찾아오는 러시아의 봄은 백야(白夜)가 시작되는 계절이었습니다.
밤 열시가 넘어 석양이 지는 풍경에 시간 관념이 혼란 스러웠습니다.
낮과 밤이 구분되지 않는 것 보다 더 혼란스러웠던 겄은 이 나라가 과연 얼마 전 까지 철의 장막 속에 가려졌던 공산당의 종주국 , 사회주의와 전체주의로 일세를 풍미하던 구 소련이라는 나라였던가 하는 의구심이었습니다.
러시아는 이제 자본주의 국가 중에서도 가장 철저한 자본주의 사회로 변모해 가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읍니다.
그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음모와 비밀의 베일에 감춰져 신비로움이 더했던 크레믈린은 개방되어 대통령 집무실이 보이는 건물 앞에서 사진도 찍을 수 있었고 스탈린이 영화를 보던 극장과 브레즈네프가 산책하던 공원까지 다 둘러 볼 수 있었습니다 .
붉은 광장에는 자유스런 복장과 표정의 내외국인이 봄 햇살을 즐기며 활보하고, 레닌의 무덤을 마주보고 있는 백화점에는 그들이 그토록 경계하고 경쟁하던 서구의 명품 브랜드 상품과 코카콜라와 맥도날드 햄버그와 아이스크림이 널려 있었습니다. 공산주의 이론의 비조 칼 막스의 동상 기단은 스케이트 보드를 타는 청소년들이 기술을 부리는 연습장 역할에 제격이었습니다.
개방과 개혁을 내걸고 체제의 변화를 추구한 지 10여년에 이토록 외형적인 상전벽해의 변신을 이룬 것 자체가 기적이 아닌 가 싶었습니다.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
필자는 우선 고르바초프와 옐친과 푸틴 대통령에 이르는 지도자들의 현실과 미래를 보는 선견지명이 탁월했다고 높이 평가하고자 합니다.
이념과 체제의 실패를 완전하고도 철저히 인정하고 냉전상태를 걷어차고 전혀 새로운 사회, 시스템(제도와 정책)을 받아들인 결과라고 보는 것입니다.
중국이 아직도 공산당의 이론적 가치를 남겨둔 채 경제분야에서만 자본주의식 개방과 개혁을 성취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러시아는 정치와 경제와 사회 전 분야에 걸쳐 서구의 그것을 온전히 모방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러시아 최대의 명절인 노동절(5월1일)에 노동자들은 더 이상 거리나 광장에 모여 구호를 외치거나 행사를 갖지 않습니다 . 황금 연휴에 모스크바 거리는 한산하여 우리같은 외국인들과 관광객들에 크레믈린과 붉은 광장을 내어 주고 노동자들은 집에서 쉬거나 대형 할인점에 몰려들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고 싶어 했던 .. 빵을 사기 위해 길게 늘어선 줄을 어디서도 볼 수 없었습니다.
모스크바 강변에는 젊은 연인들의 짙은 포옹과 키스가 싱그러웠습니다.
아쉽게도 러시아는 이러한 새로운 사회에 접근해 가고는 있지만 곳곳에 과거 사회주의 냄새가 나는 잔재가 남아 있는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그것은 에어로 플로트 비행기에 탑승하여 공항에 입국할 때 부터 호텔에서의 숙박에 이르기까지 불필요한 통제와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행정, 서비스 마인드의 부재로 금방 드러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물리적으로 저들은 시간이 더 필요할 것입니다.
광활한 영토와 그 안에 묻혀있는 무궁무진한 부존자원 , 잠재되어 있는 기초과학기술과 문화예술의 전통을 되살려 간다면 저들이 이룩할 경제적 성취는 그야말로 시간문제라고 볼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또한 급속한 변화와 혼란 속에 자본주의의 역기능 - 예를 들면 러시아 마피아와 같은 범죄의 기승과 퇴폐산업의 확산 , 빈부의 격차 등이 문제가 되고 있고 점차 확대되어 가고는 있지만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할 통과의례일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세계의 양대 초강대국으로 건재했던 시절에 대한 막연한 우월감이 아니라 러시아 국민들은 진정 민족적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역사상 가장 비참하고 처절했던 나폴레옹과의 전쟁 , 히틀러와의 전쟁에서 그들은 동장군의 도움이 아니라 러시아의 역사와 문화를 지키겠다는 민족적 일념으로 갖은 고난과 희생으로 적을 물리치고 싸워 이겼던 것입니다.
필자는 러시아가 과거 한반도 분단의 원흉이며 타도해야할 공산주의 패권국가의 이미지로 의식 속에 남아있는 것을 솔직히 인정하면서 이번 연수여행을 계기로 그 모든 것을 떨쳐내고 러시아가 국제정치와 경제무역과 문화교류상 대단히 중요한 나라라는 것을 새롭게 인식하고 외교상 북방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마침 우리가 방문한 크레믈린에서는 재선출된 푸틴 대통령의 취임식 행사가 준비되고 있었습니다. 70%이상의 압도적 지지로 당선된 푸틴에 러시아 국민들이 열광하고 있는 것은 전체주의식 일방적 지지나 KGB의 공작 때문도 아니고 오로지 직상승하고 있는 경제적 지표와 보다 개방되고 개혁될 민주주의 , 앞으로 푸틴의 리더쉽 아래 더 잘 살 수 있다는 믿음과 희망의 결과라고 보여집니다.
처음 방문한 러시아에서 너무나 큰 변화의 물결을 확인하고 문화적 충격을 받고 학습의 기회를 가진 필자는 귀국해서 훑어 본 신문기사에 금방 우울해 졌습니다.
연수 기간 중에 현직 감사원장의 " 지금이 이념 논쟁을 할때냐 " 라는 충정의 발언이 보도된 것을 보고 어찌하여 대한민국은 역사와 세계조류속에 한사코 이념에 매달려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가 혹은 뒷걸음을 치고 있는가 하는 탄식이 절로 나왔습니다.
아직도 좌향좌나 우향우 같은 흘러간 유행가의 쓰레기에 대립과 갈등의 불씨를 안고 가고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지 않나 싶습니다.
이제 세상이 바뀌고 시대가 변했으니 제발 손잡고 누가 더 국민을 잘 살게 하고 경제적 풍요를 누리며 나라를 발전시키는가 치열하게 경쟁하는 우리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붉은 광장이라는 명칭이 이념과 사상의 표현인 줄로 알았고 붉은 군대의 열병식이나 열리는 줄 알았지만 실제 러시아 사람들은 아름다운 광장이라는 속뜻을 가지고 있는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광장 입구에 더 이상 탱크는 출입할 수 없도록 러시아의 아름다운 전통 건축물을 세워 놓았습니다.
지금이 이념 논쟁을 할?냐 하는 책임있는 자리의 양식있는 어른의 말씀에 귀기울이고 정신차려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