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바이트의 예술(?)

등록일 : 2006-12-07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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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 11. 7 - 중부일보 기고문 -


억새꽃밭은빛햇살/바늘처럼쏟아지니/석상인듯숨이멎어/억새물결바라본다/이대로멈출일이다

포천명성산삼각봉/철원평야펼쳐진다/엉겅퀴는어디있나/푸른물이듣는듯한/하늘빛이여기있다

파란하늘뒤로두고/명성산억새언덕을/가만히내려봅니다/아흐그리움밀려와/눈을질끈감습니다

바람속에실려있는/님의고운목소리는/억새꽃잎물결타고/햇살로부서집니다/지천으로퍼집니다 


지난 시월 말 억새축제로 유명한 포천의 명성산을 찾았습니다. 산은 여전히 아무 말없이 세속에 때 많이 묻은 사람을 반갑게도 맞아줍니다. 한 걸음 한 걸음 땀으로 오르는 명성산 억새언덕에서 가슴이 터지는 감동을 맛보았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대자연의 품속에 안긴 때문이었나 봅니다. 그 때의 감동을 서툰 형식에 담아보았습니다. 오늘은 이 서툰 형식을 한 번 주장(?)해 보고자 합니다.


꽤 오래 전부터 핸드폰 문자메시지를 통해 소식을 전하고 마음을 전하는 일에 익숙해졌습니다. 처음에는 80바이트 안에 마음까지 담는 일이 무척이나 어려웠지만 점차 자그마한 이모티콘 하나로 고마움도 부끄러움도 기쁨도 보낼 수 있게끔 되었습니다. 국어를 가르쳐주신 선생님께서 보시면 크게 나무라시겠지만 띄어쓰기도 무시하고 가끔 이모티콘도 써가면서 80바이트에 승부를 걸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관동별곡’풍이 되었더군요. 고등학교 때 은사님께서 그렇게 감탄하시며 읊으셨던 교과서가 제 머릿속에서 잊혀진 지 오랜 줄 알았는데 아마 제 몸속에 그 운율이 녹아 있었나 봅니다.


엄지족으로 통하는 두 딸의 문자메시지 전송능력은 가히 상상을 초월합니다. 전화통화보다도 의사소통이 빠른 것 같습니다. 아마 생각을 손가락으로 하는 모양입니다. 이 녀석들이 아빠의 굼뜬 솜씨를 조금은 비웃는 것 같아 가끔 제 문자메시지 내용을 보여줍니다. ‘히이~’ 하고 웃는 녀석들! 시간이 지나면 빠른 것만큼이나 깊숙한 것의 의미를 깨닫게 될 거란 생각입니다.


제가 학교 다닐 땐 편지를 썼습니다. 중동의 모래바람 속에서 가족의 생계를 위해 고생하시던 보고픈 아버님께 몽당연필로 침을 묻혀가며 쓴 편지로 시작해서 꽤 많은 편지를 썼었는데 지금은 일 년에 한 통도 부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살아가면서 이런 일 저런 일, 고마운 분들에게 보고픈 사람에게 이젠 80바이트의 문자메시지를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예의에 어긋난다고 나무라지만 않으시면 말입니다.


세계적으로 우리 나라의 핸드폰 관련 산업은 단연 으뜸입니다. 대한민국은 몰라도 모 핸드폰 제작회사의 이름은 안다고 할 정도입니다. 헌데 자랑할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세계의 언어를 다 알지는 못하지만, 핸드폰 문자 80바이트 안에 우리의 정서를 그대로 담을 수 있는 언어는 아마 ‘한글’ 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선조들께서 오늘날의 첨단 정보통신 사회를 내다보고 ‘한글’을 만드시고 또 ‘가사문학’을 발전시켜 남기신 것은 아닐까요? 다른 나라 다른 언어권이 참으로 부러워할 조화로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연과 함께 사람들과 함께 가슴 찡한 느낌을 80바이트에 남겨 봅시다. 핸드폰을 꺼내들고 문자판을 정성스레 누르곤 마음 속 소중한 분께 보내 드립시다. 깊어가는 가을, 뒹구는 낙엽에 스산한 느낌 들 때에 정겨운 사람의 문자메시지는 참으로 따뜻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