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도 밤거리 활보하고 싶다 - 경기신문

등록일 : 2006-07-21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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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1일부터 7일까지는 여성주간이었다.


‘21세기는 여성의 시대’라는 지금 우리 사회는 여성들의 지위나 평등보다는 폭력 대상 1순위가 여성이라는 뉴스를 보면 적잖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오죽하면 남녀평등에 대한 범국민적 관심을 높이기 위해 여성발전기본법에 의해 여성주간을 정해 계몽을 하고 있을까.


여성주간 행사 기간에 우리 도내에서는 3명의 젊은 여성이 연속으로 성폭력에 의해 희생되는 살인사건이 있었다.


요즘‘묻지 마 범죄’의 범행 대상 1순위가 젊은 여성과 여자 아이란다. 여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살아야 하는 현실에 비애를 느낀다.


어느 한 보고서에 의하면 여성은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국가와 사회, 가족으로부터 끊임없는 차별과 폭력으로 피해를 겪고 있다고 한다.


여성폭력을 크게 나누어 보면 성폭력, 가정폭력, 성매매로 구분할 수 있다. 흔히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성폭력은 성을 매개로 가해지는 신체적, 언어적, 정신적 폭력을 통틀어 말한다.


성폭력은 상대방의 동의 없이 음란한 눈짓이나 말, 포옹, 신체접촉, 입맞춤 등은 물론 상습적 성폭행과 목숨까지 앗아가 버린다.


‘힘의 논리에 의해 행해지는 폭력은 사회적, 신체적 약자인 여성이라는 이유가 분명한데 여성폭력의 원인을 피해여성에게서 찾으려는 우리 사회의 가부장적 사회풍조가 근본적인 문제라 할 수 있다.


흔히 성폭력은 여성의 야한 태도나 옷차림으로 남성을 유혹했다는 방식으로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본질을 왜곡하거나 은폐하려는 경향이 있어 실태 파악도 어렵거니와 폭력을 쉽게 근절할 수도 없는 실정이다.


유아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층에서 발생하는 성폭력이 야한 행동이나 노출이 심한 여성에게서 비롯된 것일까? 통계 자료에 따르면 성폭력의 70%는 주변의 아는 사람에 의해 일어난다고 한다.


그러나 요즘 흉흉해지고 있는 여성폭력 사건은 경악을 금치 못한다. 기억하지 조차 끔찍한 화성 연쇄 살인 사건, 지난 7일 날 재판 받은 정남규 사건, 그리고 얼마 전 3명의 여성이 희생된 일련의 사건들은 우리 사회는 물론 여성들을 공포에 떨게 하고 있다.


그런데도 안전대책 하나 제대로 내 놓지 못하고 있는 정부의 태도에 할 말이 없다. 국가가 가장 먼저 책임 져야 할 일이 있다면 국민을 위험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하는 생존권이 아니겠는가?


지금 우리 사회의 여성이 겪고 있는 폭력은 결코 우리와 상관없는 남의 일이 아니다. 여자 아이가 내 자녀이고 젊은 여성이 내 동생이며, 내 사랑하는 아내일 수도 있다. 점차 흉포화 되고 광범위하며 무차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여성폭력 범죄가 더 이상 여성의 문제가 아니다.


잘못된 남성 중심적 성문화나, 성을 상품화 하여 돈으로 사고 팔수 있다는 퇴폐적 사고, 유흥과 향락산업이 확산되고 음란물이 범람하는 사회에서는 결코 여성이 안전할 수 없다.


사회적 약자가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사회가 진정한 선진사회이다. 여성 폭력의 해결 실마리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우선 어려서부터 올바른 성교육으로 성에 대한 차이와 왜곡된 성문화를 바로 인식시켜야 한다.


두 번째로 돈이면 다 된다는 식의 생명 경시풍조, 퇴폐 오락, 향락산업, 한탕주의가 사라지고 건전하고 건강한 사회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도록 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


세 번째로 가해자에 대한 교정 강화와 더불어 성범죄자에 대한 처벌 규정을 강화하고 신상 공개 등으로 사회적 처벌도 함께 병행돼야 한다.


또한, 지역 사회 유관기관과의 긴밀한 연계가 필요하며 어두운 곳이나 사고가 잦은 곳에는 가로등, CCTV 설치와 순찰을 강화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내 자신을 안전으로부터 지키려는 의식이 필요하다. 술 취한 여성을 범행 대상자로 골랐다는 말처럼 늘 내 자신을 안전으로부터 자위적인 지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여성들도 활보하고 싶다. 밤길에도 안전하게 귀가하고 친구들과 기분 좋은 술 한 잔에 취했더라도 편안하게 가정으로 돌아가고 폭력 없는 사회에서 편안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세상을 기대하는 건 무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