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겨울들녘에도 생명은 자라야 한다 - 경기일보

등록일 : 2005-01-12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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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걷이가 끝난 얼어붙은 들녘을 바라보는 농민의 마음은 무겁다. 한평생 흙과 함께 살아온 지난 삶이 후회스럽다.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일해도 주머니 속의 돈만으로는 자식가르치기도 힘든 세상이 되어 버렸다. 문득 땅이 싫다며 떠난 큰자식이 그립다. 할 수 있는 일이란 명절때 내려올 며느리와 손주를 위해 쌀이며 곡식을 하나하나 챙기는 일이다.
이것이 우리의 정든 고향이었던 농촌의 현실이다. 누군가는 우리 농촌을 지켜야 한다.
산업화·도시화 과정과 각종 개발의 후유증으로 우리의 소중한 들녘은 줄어들고 있다. 강대국의 수입 농산물이 급증하는 상황에선 더더욱 그렇다. 공급과잉과 가격하락으로 농가수지는 악화되고 결국 농가부채를 부추겨 애써 가꾼 들녘을 갈아업거나 무작정 도시로 이주하는 불행한 사태는 막아야 한다.
그러면 누가 우리의 농촌을 지킬 것이며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해답은 쉽지 않지만 몇가지를 강조해 본다. 우리 모두가 농촌과 동토의 들녘을 지키는 운동에 앞장서야 한다. 농촌의 문제는 결코 농민들만의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명과 미래 그리고 후손들에게까지 미치는 중요한 해결 과제다. 무엇보다도 첫째, 당장 시급한 것이 농촌의 경쟁력 강화다. 개방화시대 경쟁력은 가장 강력한 자구책이자 첨단무기이다. 농민들은 보다 과학적인 연구와 개발노력으로 고품질의 농산물 생산에 전념해야 한다. 경쟁력만이 개방화에 맞설 수 있다. 또한 농민 스스로가 패배자라는 이미지를 불식하고 진취적이며 창의적인 직업의식을 가져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지향하고자 하는 농업 경쟁력이다.
두번째로 이제 우리의 농촌은 젊은이들이 나서야 한다. 농촌인구의 감소와 고령화로 생산활동이 위축되는 현실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물량중심으로는 승부할 수 없다. 지역특색을 접목한 공동관리·가공을 통해 효과적인 홍보와 마케팅은 젊은이들만의 아이디어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주부들의 인식전환과 역할이 중요하다.
세번째는 소비자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동참이다. 한 예로 민족의 오랜 생명이며 뿌리인 쌀은 생산이 많은게 아니라 빵 등 식생활의 서구화로 쌀 소비가 안되어 남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식량자급률이 27%에 불과한데 밀과 옥수수는 90% 이상을 수입해 들어오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면에서 필자는 금년 쌀 수입개방을 앞두고 걱정과 안타까움이 여간 아니다. 시중에 우리 농산물에 대한 우수성과 긍정적 효능을 다룬 홍보 책자는 다양하지만 이를 식단에 실천하는 주부는 많지 않다.
예전에 쌀이 부족해 보리밥을 섞어 혼식을 장려하던 시절을 외면한 채 우리 들녘에서 수천년 이어져 온 쌀을 등한시하고 있다. 그래서 쌀소비가 안된 묵은쌀이 양곡창고에 가득차 관리와 보관 비용이 적지 않음을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된다. 변화는 한꺼번에 오지 않는다. 서서히 국민적 공감대를 가꾸고 특히 주부들이 앞장서야 할 때임을 명심해야 한다. 이제는 자치단체에서 적극 나설때다.
넷째, 취약한 농촌의 구조개선대책도 조속히 강구돼야 한다. 피폐한 농촌을 경제적 가치만으로 볼 것이 아니라 마음의 고향, 자연과 인간이 조화로움을 갖춘 곳으로의 인식전환이 중요하다. 또한 언제까지나 모든 정책을 중앙정부에 맡길순 없다. 정부의 인기영합적 지원공약도 더 이상 남발해서는 안된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하며 수백년 앞을 내다봐야 한다. 이제는 자치단체에서 적극 나서야 할 때다. 지역특성을 감안한 적정하고 체계적인 중장기 지원방안과 정책개발이 긴요하다.
끝으로 어차피 수입개방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 각자의 위치에서 자기 구실을 다하면서 변혁의 흐름에 신속히 대응해야 한다. 낡은 부분에 대한 과감한 개혁도 포함된다.
위기는 곧 기회다. 을유년(乙酉年)이 시작되는 지금, 이를 실천할 마지막 기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