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쟁이 지역구민 - 중부일보

등록일 : 2005-08-02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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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구는 지옥구라고 한다.
국회의원, 시장, 경기도의원, 시의원 등에게 어울리는 말이다.
국회의원은 약 20만 명, 경기도의원은 약 10만 명의 지역구민을 갖고 있으니, 이 속에서 일어나는 인간사도 재미있다.
첫째, 민원부탁이 있으면 만나자고 한다.
만나면 밥 먹고, 술 마시자고 한다. 부탁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다. 하루에 밥 먹는 약속은 두 번, 술 마시는 약속은 한 번, 만나야 할 사람을 모두 소화할 수가 없다. 그래서 만나지 못하면 “뻣뻣해졌다”고 한다.
이럴 땐 억울하다. 전화로 하면 10분이면 가능할 일을, 왜 두 시간을 써야 하나?
둘째, ‘얼굴보기 힘들어.’
지역구민이 무심코 던지는 한마디 말씀이지만, 우리는 가슴이 덜컹한다. ‘언제보고 지금 보나?’ 생각해 본다. 행사에 나는 참석했는데, 지역구민이 못 와서 인사를 못 나누었어도 그 책임은 나에게 돌아온다. 재미삼아 던지는 돌멩이에 개구리가 맞는 격이다.
솔직히 게으름피우다 이런 소리 들으면 가슴이 뜨끔 한다. ‘요즘 얼굴 보기 힘들어’ 약도 되고 아픔도 된다.
셋째, 지역구민은 ‘정치전문가’이다.
정치하는 나를 만나면 십중팔구는 ‘정치이야기’를 하신다.
정치를 보고, 정치를 말하는 것에 대해서 즐거움을 가진 분들이다. 이런 분들은 만나는 순간부터 끝날 때까지 묻고, 본인 생각을 말하신다. 이런 분들에게 많이 배운다.

그리고 일감을 적은 메모도 몇 장 챙기게 된다. 불행인 것은 쉬러 산행을 갔는데 이런 분들을 만나는 것이다. 지금은 아예 산에 갈 때도 메모장과 볼펜을 준비한다.
그런데 가끔씩 정치에 관심 없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다. 거짓말이다. 이런 분들은 ‘정치인’이 미운 것이다. 정작 이런 분이 말을 시작하면 정말 뜨끔한 정치비평가이다. 이런 분들이 수고한다고 어깨 툭 쳐주는 정치를 만들고 싶다. 그리고 이런 분들로부터 사랑받는 정치인이 되고 싶다.
넷째, 도깨비 방망이는 누가 갖고 있나?
필요 없는 집 때문에 ‘국기법 수급자’가 될 수 없다. 그래서 집을 팔고 싶은데 집이 안 팔린다. 그러니 도와 달라. 안타까운 민원이다.
아이가 남의 개에 물렸어요. 의료보험이 안돼요. 아주 쉬운 것 같으면서도 복잡한 민원이다.
쓰레기가 쌓이는 빈터에 공원이나 놀이터 만들어 주세요. 지금 아주 필요한 것인데 절차상 늦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민원인들의 주문은 대부분 맞는 말이다.
그런데 법, 규정에 묶여 운신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민원인들은 옳은 말인데 이것이 왜 지금 바로 안 되냐고 나무라다가, 대한민국 모든 것을 불평하신다. 이럴 때 뚝딱 해치울 수 있는 도깨비 방망이가 있었으면 좋겠다. 선한 일에만 쓸 수 있는 그런 도깨비방망이 말이다.
다섯째, “내가 누군지 아세요.”
지역구민의 얼굴과 이름 그리고 하시는 일을 기억하기가 쉽지 않다. 자주 만나더라도 사적인 이야기를 못하는 경우가 많으니 얼굴은 알아도 이름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모두 아는 척 악수를 청하고 “안녕하세요?” 하고 먼저 인사를 건넨다.
이때 개구쟁이 지역구민은 짠~ 나타나 한 말씀 하신다.
근데 의원님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는데요.
네, 말씀하시지요.
“내가 누군지 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