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러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 - 중부일보

등록일 : 2005-04-05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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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베르트 폴러첸!
필자는 우연한 기회에 그를 두 번 만났으며, 모 신문 지면에서 얼핏 보았던 북한 당국으로부터 추방당했던 인물임을 알고있다.
베일 속에 가려진 동토의 공화국 김정일의 실상을 알고자 월간조선 4월호 별책부록 ‘김정일 제거는 과연 가능 한가’라는 좌담회를 읽던 중 지면에서 두 번, 직접 상면해서 두 번 보며 강한 인상을 지을 수 없었다.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죄책감을 느끼며 떨리는 마음으로 펜을 잡아 본다.
폴러첸은 독일의 서부 노르트라인 베스트 팔렌즈의 수도 뒤셀도르프에서 1958년 2월10일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1977년 군의병으로 함부루크 군의병 근무를 마치고, 뒤셀도르프 의과대학 응급 의학과를 졸업한 수재이며, 또한 응급의학과 의사이다.
뒤셀도르프는 인구 55만8천 500명(99년 통계)이 살고 있는, 공업,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 도시이고 의과대학, 약학대학, 로베르트슈만 음악학교, 가극학교, 예술 아카데미 등이 즐비하며, 라인강이 흐르고 있는 자연경관이 수려한 도시이다.
2004년 8월에 장마비를 맞으며 손학규 지사와 첨단기업 유치를 위해 뒤셀드르프의 티센쿠룹을 찾아 밤을 지세웠던 기억이 생생 하기에 감회가 새롭다.
폴러첸은 48세의 젊은 의사로서, 독일 NGO단체인 노어베즈트 긴급 의사회 회원 으로서, 북한 주민들의 의료봉사 활동차 1999년 7월에 입국하여 의료 봉사를 하던 중, 용해된 철에 심한 화상을 입은 노동자에게 동료와 함께 살을 도려내, 피부이식을 시켜 주어 북한 언론의 갈채를 받았다.
그로 인해 우정의 메달과 함께 VIP 여권, 운전 면허증을 발급 받게 되어 외국인과 접근이 금지된 구역을 자유로이 활보 할 수 있는 그만의 특권을 갖게 되었다.
그는 이때 농촌 지역은 물론 고아원, 노동자 수용소를 찾아 다니며 북한의 이중적이고 가려진 실상을 낱낱이 보아 오던중, 길가에 버려진 군인의 시체를 우연히 발견하게 된다.
응급 의사의 예리한 관찰력으로 고문과 구타에 의한 타살된 시체임을 확인하고, 이때부터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인권 유린은 물론, 굶주림에 허덕이는 동토의 공화국 인민들이, 세계 각국에서 지원되는 구호물자가 500만 군인과 그가족 그리고 고위 당원들에게 우선 지급되고, 인민들에겐 골고루 지원되지 않는 점을 깨닫고, 이를 비판하다 2000년 12월30일 북한으로부터 추방당하게 된다.
그는 여기서 세계 제2차대전 당시 폴란드의 아우스비츄형무소에서 무참하게 독가스로 학살하여 화장시킨, 600만명의 유태인 시체를 떠올렸을 것이다. 한 인간의 대를 잇는 광적인 정권욕에 무고한 백성이 처참하게 죽은 시신에서 그는 의사로서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다시금 외우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제 의업에 종사할 허락을 받으며
-중략-
나는 양심과 위엄으로서 의술을 베풀겠노라
나는 인종, 종교, 국적, 정당정파, 또는 사회적 지위 여하를 초월하여 환자에 대한 나의 의무를 지킬 것이다.
나는 비록 위험을 당할지라도 나의 의식을 인도에 어긋나게 쓰지 않겠노라’
이때부터 의사의 본분에서 또 다른 인권 운동가로서 변신한 폴러첸은 분단된 한반도의 모습이 자신의 조국과 유사 동일한 점을 발견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땅에 사는 대한민국 국민이여, 내조국 우리의 동포가 대를 잇는 폭정에, 내부모 내형제가 피골이 상접한 채로 고문과 구타에 죽어가는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지 폴러첸을 다시금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