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에 대해 - 경기신문

등록일 : 2005-12-30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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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학살을 발판으로 들어선 전두환정권의 서슬이 시퍼런 80년대에 우리는 대학을 다니면서 정말 ‘폭력’의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였다.

학문의 전당이라고 하는 학교에는 곳곳에 사복경찰의 날카로운 눈매가 자리를 잡았고 정권을 비판하는 구호 한마디만 하여도 폭행과 더불어 연행되고 구속되기가 일수였다.

시위주동자나 조직 주도자들이 연행되면 구타는 물론이요 고춧가루물 먹이기, 통닭구이 등의 고문을 당하는 것도 비일비재하였다. 지금은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는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이 이근안에게 살인적 고문을 당하던 것도, 권인숙양이 성고문을 당한 것도 바로 이 시대였다.

언론의 자유도 없고 집회 시위의 자유도 보장이 되지 않는 사회에서 공권력을 동원한 군사독재 정권과 맞서기 위해 우리는 반폭력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폭력에 대한 반폭력은 과연 정당한 것인가?‘는 우리의 심각한 주제이고 고민이었다. 프란츠 파농이라는 알제리 혁명가의 ‘자기의 땅에서 유배당한 자들’이라는 책을 읽고 폭력과 반폭력에 대해 밤새워 고민하고 토론하기도 하였다.

어쨌든 전두환정권의 탄압은 갈수록 강해지고 점차 이에 대한 우리의 저항도 거세어져 갔다. 단지 어깨를 걸고 ‘독재타도’를 외치며 시위를 하던 것이 점차 돌멩이를 던지는 것으로, 다시 각목을 드는 것으로 변해갔다.

80년대 중반, 신림동 4거리에서 서울대생들의 분신자살을 시작으로 시위는 보다 과격해지기 시작했다. 친구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하며, 백골단이라고 불리던 경찰의 무자비한 진압방식에 맞서기 위해 각목과 쇠파이프는 물론이고 소위 Molotov cocktail이라고 불리던 화염병이 등장하였다.

하지만 이제 ‘문민정부‘시대의 무탄무석(無憚無石)의 논쟁을 시발로, ‘국민의정부‘를 거쳐 ‘참여정부‘에 들어오면서 시위형태도 화염병과 각목은 거의 사라지고 촛불집회 등 문화적 시위가 점차 정착이 되고 있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 있어서 굳이 폭력으로 저항할 만큼의 독재권력이 존재하지도 않고 또 언론 출판 집회 시위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는 상태에서 굳이 폭력적으로 대항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얼마전 여의도에서 열린 농민대회 시위진압과정에서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인해 고 전용철 농민이 사망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군사독재 시절도 아닌 이 시대에 아까운 목숨을 잃는 일이 발생하여 정말 안타깝기만 하다.

대통령이 사과하였듯이 정말 공권력은 보다 엄격한 기준을 갖고 집행되어야 한다. 감정적 대응이나 과잉대응은 공권력으로서는 절대 인정될 수 없다. 또한 집회 및 시위를 하는 사람들도 이제는 각목과 쇠파이프를 놓아야 한다.

시위를 하는 농민들의 심정이야 백분 이해가 된다고 하더라도 더 이상 폭력은 안된다.

이 시대에 폭력은 결코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없다.

지금은 독재정권 시대가 아니며 또 지금의 폭력은 반폭력이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