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에 가보셨나요? - 경기신문

등록일 : 2005-12-07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1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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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난 달 23일 평양을 방문했다. 평양-남포간을 달리는 통일마라톤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우리를 태운 비행기가 인천공항을 이륙했을 때 만감이 교차했다. 50 여 년 분단의 세월. 그 분단이 가져온 크고 작은 비극적 사건들이 머리를 스쳐갔다. 평양 방문이 결정된 몇 일 간 얼마나 마음이 설레고 잠을 설쳤던가. 온갖 상상 속의 평양과 북한을 그려보는 순간 어느 새 비행기는 순안공항에 도착했다. 공항 도착 직전 언뜻 창밖의 민둥산이 시야에 들어오면서 순간 가슴이 철렁 하기도 했다. 연탄이 모자라서 땔감으로 나무를 모두 베어다 써서… 불안한 마음으로 고려 호텔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호텔로 향하던 도로 양편의 들녘은 가을 걷이가 끝난터라 허허하기만 했는데 “금년 농사는 아주 잘 되었다”고 안내원이 설명을 해주었다. 중심가로 접어들면서 건물 곳 곳에 김일성 수령 동지, 김정일 위원장 문구가 들어있는 온갖 구호들이 강렬하게 적혀 있었으며, 가끔 섬? 섬?한 구호도 눈에 띄었다. 평양 중심가에 위치한 호텔에 도착하기까지의 도로 및 도로변에는 차량의 통행도 사람들의 왕래도 너무 없어서 삭막하고 황량한 느낌에 마음이 무거웠다. 호텔 맞은 편에 식당가가 보였는데 도무지 사람의 출입이 보이지가 않았다.

다음 날 마라톤 대회가 열렸고 최악의 상태에서 하프코스를 완주했다. 평양에서 남포로 달리는 광복거리 도로변에서 많은 주민들이 손을 흔들어 주었다. 반갑고 또 반가웠지만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어쩌면 몰골이 저렇게 하나같이 초췌하고 옷매무새가 저렇게 남루할까? 형언키 어려운 감정이 복받쳐 오르고 가슴이 저미어 왔다. 달리면서 눈을 지그시 감았다. ‘우리는 누구이고 저들은 누구인가’,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살고 있나’, ‘그리고 또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라는 삶의 본질적인 문제들에 대해 끝없이 묻고 답하며 독백처럼 되뇌었다.

그 날 밤 평양시내 한 음식점에서 식사를 했다. 식사 후 밖으로 나온 나는 또 한 번 놀랐다. 좀 느즈막한 시간이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도로 건너 아파트 단지의 뜨문 뜨문 보이는 불빛들을 제외하고는 거리는 어두움 그 자체였다. 이 어둠의 거리를 어떻게 해서 빛의 거리, 밝음의 거리, 희망의 거리로 만들 수 있을까? 하고 또 다시 두려움 속에 깊은 생각에 잠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 이념도 중요하다. 제도도 중요하다. 정치도 중요하고 민족도 국가도 모두 중요하다. 그러나 어떠한 이유를 떠나서라도 한 인간, 인간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어야 한다. 더 더욱이 헐벗고 굶주리고 추위에 떨어서는 안된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들의 기본적인 의식주의 해결문제는 국가와 민족과 인종 모두를 초월해 인류 모두가 함께 져야 할 무한책임의 사명이어야 한다. 나는 한 동안 우리의 같은 핏줄, 우리 동포가 그런 경우에 해당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충격에 사로잡혀야 했다.

이튿 날 묘향산, 보현사, 기념품 전시관 용문대굴을 다녔지만 마음이 가볍지 못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귀국을 위해 공항으로 향하면서 이런 결론이 내려졌다. 향 후 대북 및 통일 전략을 운운하기 이전에 북한 주민의 의식주 생활의 개선과 향상에 최우선 정책을 두어야 할 것이라고, 북한의 경제를 살려 나갈 수 있는 산업을 일으키는 일에 한국이 중심이 되어 세계가 동참하도록 해야 한다고, 핵 문제 해결책을 포함한 미국의 북한 경제 봉쇄정책의 해결 등에 대해서는 남·북이 직접 해결해 나가는 원칙을 확고히 해야 한다고, 어떻게 북한을 개방 개혁으로 이끄느냐 하는 것은 지난한 문제일 것이다. 북한의 체제를 변화시켜 나가가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에, 통일에 대한 접근 방법이 전혀 새로워 져야 한다는 판단 때문에, 그리고 그 접근방법을 다양하게 연구해야 한다는 판단이 서져서 귀국길에 오르는 발걸음이 마냥 무겁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