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땅 독도를 지키자 - 중부일보

등록일 : 2004-02-03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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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정부는 독도 우표발행과 관련하여 망언을 일삼는 일본 아소다로 총무상에 이어 고이즈미 총리의 독도 소유권 망언으로 한·일간 독도 사이버 전쟁이 벌어지는 가운데 독도의 꽃과 새 등을 소재로 담은 ‘독도의 자연’우표가 지난 달 16일 판매 3시간여 만에 매진되어 한·일 독도 분쟁을 둘러싼 우리 국민들의 관심과 분노가 가라앉지 않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독도는 지리적·역사적으로나 국제법상 대한민국의 신성한 영토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철면피 같은 침략 근성을 버리지 못한 고이즈미 내각은 치밀하고 장기적인 계획으로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억지주장을 하는 이유는 일본 내 극우세력을 자극해 정치적 이득과 천연가스 등을 챙기려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말로 한심한 일본인들에게 필자는 일본의 독도소유권 주장이 얼마나 허구에 가득 찬 것인지 평생을 독도지킴이로 살아온 서지학자 고(故) 이종학 선생이 지난 1월 수원시에 기증한 자료 중 18세기 세계지도를 통해 우리 땅이라는 증거를 설명하겠다.


일본인 선대(仙臺) 임자평(林子平·일본교 북질정 상징목)이 천명(天明) 5년 1785년에 제작한 이 지도는 시기가 일본이 독도를 주인 없는 땅이라며 일본령으로 편입시킨 1900년대 초보다 100여년 앞섰다는 점에서 고이즈미의 망언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알 수 있다.


독도가 처음 우리나라의 문헌에 등장한 시기는 고려시대 김부식이 편찬한 ‘삼국사기’이며, 이 자료에 의하면 울릉도와 우산도(독도)라는 두 개의 섬이 우산국이라는 하나의 독립국을 형성하고 있다.

신라 지증왕 13년(512년)에 우산국을 정복하였으며, 우산국은 신라에 매년 토산물을 바쳤다고 기록되어 있다.

17세기 말 최초로 일본과의 영유권 분쟁이 있었고, 조선 숙종 때 2차례에 걸친 일본 본토 내에서의 안용복의 활약으로 울릉도와 독도를 둘러싼 영토분쟁은 일본측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의 문서를 보내옴으로써 일단락 되었다.


또한 우리 땅이라는 증거는 서기 512년 우산국이 신라에 복속된 시점이며, 세종실록(1432년)을 보면 우산국과 독도의 두 섬은 서로 거리가 멀지 않아 날씨가 맑으면 서로 바라볼 수 있다고 기록되어 두 섬이 조선왕조의 영유권한에 속해 있음을 분명히 했다. 이뿐 아니라 은주 시청합기(1667년)를 비롯한 일본측 역사서도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 영토임을 인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반박자료는 얼마든지 있다.


18세기 초 영국의 조지1세(재위 1714~1727년) 때 제작되어 있는 세계지도에 동해를 한국해(Sea of corea)라고 표기한 것과 19세기 말 일본 명치정부가 독도를 조선영토라고 인정한 문서에서도 속속 발견되고 있다.


또한 프랑스 지리학자 기용드릴이 1705년에 제작한 인도-중국지도, 1710년 이탈리아의 지도학자 슈포트가 제작한 중국지도에는 동해는 한국해로 기록되어 있다. 이 정도면 아무리 무식한 일본사람이라도 남의 땅을 자기 땅이라고 우기지는 못할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 해 볼 때 독도 문제에 대해 우리 정부는 강력한 입장으로 독도에 대한 한국의 확고한 입장을 밝혀주길 바라며 대한민국 국민 모두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단합하여 미래의 노다지 우리 땅 ‘독도’를 철저히 지켜야 할 것이다.